전국시대 말기(기원전 3세기)에 중국의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韓非子)의 최후는 비참했다. 사마천의 ‘사기’ 노자한비열전에 따르면 한비자는 스승 순자 아래서 동문수학한 친구 이사(李斯)의 계략에 걸려 감옥에서 독살됐다. 이사는 자신의 주군인 진시황이 한비자가 쓴 책을 읽고 감탄하자 한비자를 헐뜯어 죽이기를 권한, 질투심 많고 간사한 인물이었다는 게 통설이다.
그런데 한비자가 죽은 것은 이사 때문이 아니라 진시황이 아끼던 종횡가(외교 책략가) 요가(姚賈)를 무고했다가 진시황의 노여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새로운 주장이 나왔다. 근거는 ‘사기’보다 앞선 시기에 편찬된 ‘전국책(戰國策)’의 기록이다.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사진)은 다음 달 7, 8일 서울 서초구 국립외교원에서 열리는 한국정치학회 학술회의에서 이런 주장을 담은 논문 ‘법가와 종횡가의 충돌’을 발표한다. 신 소장은 “남북조시대 남조 송나라의 역사가 배인(裵’)은 ‘사기’ 주석서인 ‘사기집해’를 펴내면서 한비자 독살 부분에 ‘사기’ 내용과는 다른 ‘전국책’ 진책(秦策)의 대목을 거론했다”고 밝혔다.
신 소장은 배인의 주석에 착안해 한비자의 죽음과 관련한 자료를 뒤진 결과 당시 한나라의 사신으로 진나라를 방문한 한비자가 요가를 무함(誣陷)했다가 역공을 받아 진시황의 명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전국책’ 진책에 따르면 한비자는 진시황에게 “요가가 대왕의 권세와 나라의 보물을 이용해 밖으로 제후들과 사사로이 교분을 맺었다. 대왕은 요가의 실체를 잘 살피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진시황은 이 말을 듣고 요가의 관작(官爵)을 박탈했다가 그것이 무고임을 알고 크게 노해 한비자를 주살했다는 것이다.
신 소장은 한비자가 요가를 공격한 이유에 대해 2가지 가능성을 제기했다. 첫째는 법가였던 한비자가 법가의 라이벌인 종횡가를 제거하면서 진시황의 총애까지 얻으려 했을 가능성이다. 둘째는 통설과 반대로 한비자가 같은 법가이면서 종횡가의 행보를 겸했던 이사의 출세를 시기해 이사와 같은 편인 요가를 먼저 공격했다가 제 꾀에 제가 넘어갔다는 것이다.
신 소장은 “설령 이사가 요가와 함께 한비자 제거에 가담했다고 하더라도 주범은 어디까지나 요가였다”며 “이사가 한비자에게 독을 건넨 것도 독살이 아니라 간첩죄에 해당하는 죄로 거열형(사지를 찢어 죽이는 형벌)에 처해질 친구의 마지막을 위엄 있게 지켜주기 위한 우정의 발로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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