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공덕동 LG마포빌딩 4층은 일반적인 사무실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자작나무로 둘러싸인 휴게실 겸 갤러리가 먼저 보인다. 갤러리 내부에는 ‘다름(difference)’을 주제로 대비되는 세계 곳곳의 풍경 사진들이 걸려 있다.
자작나무 공간 옆 사무실 벽에는 독특한 사각모양 타일이 불규칙적으로 붙어있다. 타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그림과 사진들이 담겨 있다. 만화 주인공 그림도 있고, 먼곳을 바라보는 고양이 사진도 있다.
“직원들이 각기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를 골라서 만든 일종의 이미지월(image wall)이에요.”
눈을 가릴 만큼 긴 앞머리에 동그란 ‘김구 선생’ 스타일의 안경을 낀 이현종 HS애드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가 말했다. 그는 HS애드의 창의력, 다시 말해 제작 부서를 총괄하고 있다. 4층은 회사의 아이디어 뱅크인 광고제작 부서가 자리 잡은 곳이다.
●우연이 만드는 아름다움
이미지월과 자작나무 휴게실은 모두 이 CCO의 아이디어다. 2010년 사무실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그가 공간 인테리어를 제안했다. 이 CCO는 “제작을 총괄하는 크리에이티브센터는 개개인의 상상력이 자산이 되는 곳”이라며 “각기 서로 다른 이미지를 이어 붙인 이미지월은 우연하게 충돌하는 상반된 이미지가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에게 공간은 공기이자 곧 문화다. 이 CCO는 “어떤 공간에 들어서면 특유의 공기가 있다”며 “공간 속 오브제의 배치가 어떤 흐름을 만들어내면서 기분 좋은 공기가 형성되고 이것이 하나의 문화가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공간의 인테리어를 좋아한다. 클래식하고 미니멀한 스타일을 좋아하지만 늘 그렇지만도 않다. 기업의 임원이면서 동시에 자유로운 광고인인 것처럼 무언가 깨는 ‘의외성’을 좋아한다. 어느 집에나 모델하우스처럼 똑같이 배치되어 있는 것은 질색이다. TV는 왜 꼭 TV장에 올려놓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바닥에 뒀다.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똑같은 소파 디자인도 싫다. 그래서 동그란 모양의 베이지색과 올리브 그린 ‘리네로제’ 소파를 샀다. 그는 “리네로제의 독특한 디자인과 색깔이 좋다”며 “아내와 함께 논현동에 조명과 소품을 보러 다니는 것도 재밌다”고 소개했다.
‘귀차니스트’로 시간을 보내다 갑자기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에 들뜨기도 한다. 심할 때에는 이사를 간다. 1층 화단을 전용으로 쓸 수 있는 서울 목동의 아파트에 살다가 도회적인 동네가 궁금해서 반포 한복판의 고층 아파트로 이사했다. 복잡한 반포에 싫증이 나자 올해 방배동 한적한 빌라로 옮겼다.
인테리어 외에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새로움에 대한 열망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 또 있다. 바로 패션이다. 그는 얼마 전 ‘질렀다’는 30만 원짜리 한국 디자이너의 면 티셔츠를 보여줬다. 이 CCO는 “티셔츠 치고 너무 비쌌지만 자수가 독특하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이라고 말했다.
●예술의 재구성
이 CCO의 우연성에 대한 애정과 철학은 광고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대표적인 작품이 LG의 명화시리즈. 모니리자와 반 고흐가 3차원(3D) 안경을 쓰고 클림트의 그림을 TV로 감상하고, 마티스 그림의 주인공은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 예술을 재구성해 현대 전자기기를 넣어 색다른 광고를 만들어낸 것이다. 최근 화제가 된 옵티머스G 일러스트 애니메이션 광고도 그가 지휘한 작품이다.
이 CCO는 “가끔 글을 쓰다가 일부러 맞춤법을 틀려 써 본다. 바다를 바보라고 써보는 식”이라며 “그러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서로 모순되는 것을 충돌시켜 보는 즐거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1962년생인 이 CCO는 올해 쉰 살이다. 감각과 나이는 연관이 있을까?
“환갑을 훌쩍 넘긴 패션 디자이너 베라 왕은 ‘나는 젊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새로운 디자이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나이에 대한 편견과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즐거움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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