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 ‘자작나무를 찾아서’ 부분》 그렇다. 한겨울, 강원도 인제에 가면 자작나무 숲이 있다. 살결 뽀얀 ‘순백의 정령들’이 당차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북풍한설 칼산에 알몸으로 떼 지어 서 있다. 겨울 자작나무는 갈매나무처럼 정갈하다. 기품 있고 고결하다. 하얗고 긴 종아리가 안쓰럽다. 흰 목덜미가 애틋하다.
자작나무는 산비탈 높은 등성이에 하얀 잔가시로 박혀 있다. 촘촘한 ‘참빗 가슴뼈’ 틈새로 설핏한 햇살이 비낀다. 가녀리다. 바람이 불면 여리게 몸을 떤다. 쌩! 쌩! 칼바람에 몸이 아리다.
자작나무는 겉은 연약하지만 속은 강하다. 자작나무 숲에선 북방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만주벌판의 말발굽 소리가 들린다. 여진 몽골족 추장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곰과 승냥이 여우 울음소리도 울린다. 땡땡 얼어붙은 얼음산에서 커엉! 컹! 늑대 울음소리를 낸다.
강원 인제군 남면 수산리 자작나무숲의 나무는 100만 그루가 넘는다. 제지회사 동해펄프(현 무림P&P)가 10년 동안(1986∼1995년) 600ha(약 181만5000평·응봉산 12골짜기) 땅에 180만여 그루를 심었다. 길게는 25년, 짧게는 16년 정도 나이를 먹었다. 큰 것이 밑동 지름 20cm, 키 15m쯤 된다. 군데군데 휘어진 나무가 안쓰럽다.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 숲은 아늑하다. 하얀 요정들의 순백공화국. 눈밭의 ‘숲속 작은 나라’. 25ha(7만5000여 평)에 4만여 그루로 수산리에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한 곳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어 빽빽하다. 숲에 다가서면 향긋한 나무 냄새가 후욱! 코에 스며든다. 머릿속이 박하처럼 맑아진다. 바로 자작나무 특유의 ‘자일리톨 껌’ 향기다. 자작나무 사이의 산책 코스가 오붓하다. 1코스 0.9km, 2코스 1.5km, 3코스 1.1km. 다 돌아봐도 한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매끈한 자작나무 몸을 만져보는 맛이 그만이다. 단단하면서도 촉촉하다.
수산리 자작나무 숲은 트레킹 코스로 으뜸이다. 수산리∼어론리 19km 임도코스도 5, 6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임도는 해발 450∼580m에 걸쳐 있다. 대체로 평탄하지만 눈밭길이라 아이젠 준비는 필수다.
원대리 자작나무 숲도 산림초소에서 3km쯤 걸어야 한다. 승용차는 산림초소 부근 도로에 세워둬야 한다. 산길은 역시 양지바른 곳을 빼곤 눈밭이다. 아이들과 같이 걸어도 큰 무리가 없다.
자작나무는 북위 45도 위쪽 추운 지방에서 잘 자란다. 기름기가 많아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낸다고 해서 자작나무다. 우리나라에선 백두산 개마고원 일대(북위 42도)가 빽빽하다.
그렇다. 옛 개마고원 사람들은 자작나무로 움막을 짓고, 자작나무 껍질로 지붕을 얹었다. 자작나무 장작으로 밥을 짓고 군불을 땠다. 자작나무 횃불로 길을 밝혔다. 산삼을 캐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서 고이 보관했다. 여름날 밥이 쉬지 않도록 자작나무 껍질에 갈무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숨을 거두면 자작나무 껍질에 싸여 땅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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