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ISSUE]갑옷을 단칼에 벤다? 웃겨도 너~무 웃겨!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일 03시 00분


역사드라마의 불편한 진실들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이 우리나라 전통 국궁을 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이 우리나라 전통 국궁을 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요즘 사극은 고증에 얽매이지 않는다. 때론 ‘퓨전 사극’이란 간판을 걸고 역사를 그저 드라마의 모티브로만 이용한다. 남자 주인공들은 모두 상투 없이 웨이브 진 긴 머리카락을 자랑한다. 여주인공들은 전통 한복에선 찾아보기 힘든 대담한 색상의 시스루룩(속살이 비치는 의상)을 소화한다.

물론 드라마는 픽션이다. 사극 역시 100% 고증에만 신경 쓰면 보는 재미가 반감될 수도 있다. 그런데 해도 해도 너무할 때가 있다. 아이가 “저 시대엔 정말 저랬어?”라고 물으면 부모가 정말 난감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백번 양보해 ‘역사를 이용한 문화 콘텐츠’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인정하더라도, 아이의 대답에는 제대로 답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분들을 위해 동아일보 주말섹션 ‘O₂’가 무기 및 전쟁사 전문가인 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과 박재광 건국대박물관 학예과장에게 도움을 청했다. 지면 사정상 주제를 무기 및 전쟁 분야로 한정했다.

갑옷: 철갑도 한칼에 잘린다?
전문가들에게 공통적으로 던진 첫 질문은 “정말 사극에서처럼 갑옷 입은 사람을 단칼에 벨 수 있느냐”였다. 이구동성으로 나온 대답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다”였다. 철로 만든 것은 물론이고 가죽으로 만든 갑옷도 기름칠을 하면 단단해져 칼날에 잘 잘리지 않는다. 따라서 갑옷 입은 무사는 상대하기가 매우 힘들었다. 최형국 소장은 “검술에서는 갑옷이 완벽하게 방어하지 못하는 겨드랑이나 무릎 주위를 공격하는 기술이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일본 영화 ‘바람의 검, 신선조’를 보면 갑옷이 보호하지 못하는 목 부분을 칼날로 긋듯이 공격하는 검술이 나온다.

칼날이 들어가지 않는 갑옷을 무력화하기 위해 타격 위주의 무기가 쓰이기도 했다. 철퇴와 편곤이 대표적이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기병이 들여온 마상편곤은 매우 비인도적이지만 극도로 효과적인 무기다. 명군에 속해 있던 타타르족 기병들은 편곤으로 왜군 보병 수천 명을 순식간에 무찔렀다.(‘조선의 무기와 갑옷’, 민승기) 긴 장대에 쇠를 덧씌운 작은 막대를 연결한 이 무기(도리깨와 구조가 같음)는 곤봉보다 2배 이상 강한 타격력을 가진다. 말 그대로 상대를 ‘때려죽이는’ 용도로 쓰이며, 창이나 칼처럼 찌른 후 빼낼 필요도 없다.

칼: 왜 배우들은 칼을 들고 다닐까?
‘정조반차도’의 무인 그림은 우리 조상들이 칼자루가 뒤로가게 해 칼을 차고 다녔음을 말해 준다.
‘정조반차도’의 무인 그림은 우리 조상들이 칼자루가 뒤로가게 해 칼을 차고 다녔음을 말해 준다.
칼과 관련해서는 사극의 오류가 꽤 많다. 가장 흔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은 칼을 휴대하는 방법. 일본도는 칼날을 위로 해(칼을 뒤집어) 앞에서 뒤로 허리띠에 끼워 넣지만, 조선 환도의 휴대법은 칼날을 아래로 한 채로 칼집을 허리띠에 매다는 것이 대표적이었다. 조선 무사들은 평상시에는 도보 이동과 활쏘기에 편하게 칼자루가 뒤쪽으로 향하게 했다. 유사시에는 칼자루를 빨리 앞으로 돌려 칼을 뽑았는데, 이것은 360도 회전하는 철물(허리띠와 칼집을 연결하는 띠돈) 덕에 가능했다.

사극을 보면 칼을 손에 들고 다니는 모습이 많이 나오는데, 이럴 경우 실제로는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일단 무거운 쇳덩이인 칼을 손에 들고 다니면 힘이 많이 든다. 또 칼은 양손으로 쥐고 휘둘러야 상대방을 제압하는 데 유리한데, 한 손으로 칼집을 잡고 있으면 힘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이순신 장군의 시조에도 ‘큰 칼 손에 들고’가 아닌 ‘큰 칼 옆에 차고’란 대목이 나오지 않는가.

삼국 시대에 칼 몸이 휘어진 곡선도가 나오는 것도 오류일 수 있다. 곡선도는 휘어진 만곡도(彎曲刀)를 쓰는 몽골군의 침략 이전에는 널리 쓰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창: ‘분대지원무기’였던 삼지창
조선시대를 그린 사극을 보면 시기를 막론하고 삼지창(정확한 명칭은 당파)을 든 병사들이 우르르 나온다. 특히 일반 병졸이 당파 이외의 무기를 사용하는 장면은 거의 없다. 그런데 당파는 사실 임진왜란 때 명나라의 원군이 본격적으로 보급한 것이다. 게다가 아무나 들고 다니는 ‘기본병기’가 아니라, 특수한 역할을 맡은 사람만 사용하는 무기였다. 요즘 식으로 치면 ‘분대지원화기’인 M60 기관총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당파는 적병을 찌르기보다는 상대의 창이나 칼을 세 개의 가지 사이에 끼우고 비틀어 무력화하는 역할을 했다. 특히 일본도를 제압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당파를 든 병사가 적의 창이나 칼을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있으면 동료 병사가 그 적을 처치했다.

활: 서양 활처럼 쏘면 손가락이 찢어진다
국궁은 서양 활과 달리 엄지손가락에 끼우는 깍지에 활시위를 걸어 쏜다.
국궁은 서양 활과 달리 엄지손가락에 끼우는 깍지에 활시위를 걸어 쏜다.
여러분이 활을 손에 쥐게 된다면 어떻게 쏘겠는가. 아마도 10명 중 8, 9명은 검지와 중지로 활시위를 당길 것이다. 사극을 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것은 서양 활을 쏘는 지중해 사법(射法·정확히는 약지도 사용)에 가깝다. 우리 활을 쏘는 방법은 서양의 그것과 아주 다르다. 엄지손가락에 끼운 깍지에 활시위를 걸고 당겨 쏜다. 시위를 당길 때는 자연스레 주먹을 쥔 듯한 모양이 된다. 국궁을 서양 활처럼 쏘면 손가락 살이 찢어질 수 있다.

사극에는 주로 원거리의 적을 활로 공격하는 방법만 나온다. 실제 활은 근거리의 적을 공격하는 데도 많이 쓰였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족 레골라스가 싸우던 것처럼 말이다. 무과시험에도 근접사 과목이 있었다.

우리가 사극에서 흔히 보는 둥근 대롱 모양의 화살통은 실전에선 거의 쓰이지 않았다. 실전에서는 가죽 등으로 만든 궁대(활집)와 시복(화살집)이 사용됐다. 가죽 시복은 원통형 화살통과 달리 무사가 허리를 굽혀도 화살이 쏟아지지 않게 잡아준다.

말: 옛날 군마는 짜리몽땅했다
말(馬) 문제는 아직도 고쳐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극에 등장하는 말은 거의 다 서양의 경주용 말, 그것도 대부분 영국산 서러브레드 품종이다. 이 말은 발목이 약한 데다 다혈질이어서 전투에 부적합하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탔던 말은 현재의 몽골말 정도인 중간 크기 말, 즉 중마(中馬)였다. 중마는 발목이 튼튼해 코너링에 강하고 잘 넘어지지 않는다. 산지를 잘 걷고 지그재그 형태 기동도 쉽게 소화해 냈다고 한다.

말과 관련해 흔한 또 다른 오류는 등자와 관련한 것이다. 등자는 말안장에 달린 도구로 기수가 발을 끼워 넣게 만든 것이다. 기수가 말 위에서 쉽게 균형을 잡고 안정적으로 승마를 할 수 있게 해 준다. 또 기수와 말의 체중을 함께 무기에 실어 적을 타격할 수 있게 한다. 북방유목민족 국가 또는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등자는 만주와 한반도에는 4세기경에, 서양에는 6∼7세기경에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통치기 전후를 다룬 미국 드라마 ‘롬(Rome)’이나 영화 ‘트로이’에는 등자 없이 말을 타는 장면이 등장한다. 기원전이 배경인 ‘주몽’ 같은 드라마에 등자가 달린 말이 나오는 것은 ‘옥에 티’일 수 있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드라마는 픽션이다. 100% 역사적 사실만으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에 근거해야 보는 재미가 더 커진다. 건국대박물관의 박재광 학예과장은 “과거 문화에만 집착하면 새로운 창작물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면서도 “어느 정도의 역사적 진실, 즉 원형은 지켜야 역사극을 보는 기본적 재미가 생긴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식 수준이 높아진 요즘 시청자들은 보다 리얼한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가. 아무리 픽션이라도 디테일이 살면 더 생생한 재미가 생길 것이다.

주말 아침, 시간이 여유로운 분들은 드라마 ‘한성별곡’에 나왔던 ‘풍안경(風眼鏡)’이란 것을 한번 인터넷에서 찾아보시라. 조선시대 기병이 썼던 고글이라고 한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역사드라마#갑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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