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 만나는 詩]흐린 불빛 아래 왁자지껄한 실내… 情도 밤도 삶도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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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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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녘 도시의 뒤편. 노란 백열등 아래 어깨 굽은 사내들이 모여든다. 고기 타는 냄새에 가게 안은 금세 매캐해지고, 떨어진 기름방울에 놀란 숯불이 파닥 뛰어오르며 성을 낸다. 집게 든 손은 분주하고, 노련한 가위질은 시장기를 더하고. 상추 위에 번들거리는 고기 한 점, 마늘 한 점 올려놓고 젓가락으로 쌈장을 치댄 뒤 한 점. 고기 냄새, 사람 냄새 진동하고, 정(情)도 밤도 이내 삶도 깊어만 가는데.

‘이달에 만나는 시’ 12월 추천작으로 노향림 시인(70)의 ‘원조 최대포집’을 선정했다. 지난달 나온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바다가 처음 번역된 문장’(실천문학사)에 수록됐다. 시인 이건청 장석주 김요일 이원 손택수가 추천에 참여했다.

어느 때보다 술자리가 잦은 연말. 저녁을 겸해 고기 한 점, 소주 한잔은 익숙한 레퍼토리다. 여기에 얼큰한 된장찌개와 하얀 쌀밥이 더해지면 부러울 게 없다. 노 시인의 집은 10년 넘게 공덕역 인근의 서울 마포구 도화동. 소주 한두 잔이 주량일 정도로 술을 잘 못하는 시인은 집 근처 왁자지껄한 고깃집 분위기가 신기했다.

“어떨 때 가면 만원인데, 저로서는 ‘대포집도 줄을 서는구나’ 싶었어요. 근처를 지나갈 때면 상당히 인간적인 불빛이 새어나오죠. 고기 냄새가 아니라 사람 냄새가 나는 거죠.”

노향림 시인. 실천문학사 제공
노향림 시인. 실천문학사 제공
시인은 7년 만에 이번 시집을 냈다. 일상적 공간을 친근한 시어들로 풀어내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자기 자신을 성찰하는 게 결국 문학인데, 독자들도 제 시를 통해 성찰의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이원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40여 년을 ‘묘사’로만 시 쓰기를 해온 노향림의 시가 ‘무심의 묘사’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놀랍다. 어떤 풍경화를 그려내도 ‘새파란 하늘이 툭 터진’ 것 같은 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은 더 놀랍다.” 장석주 시인은 “(노향림의) 말들은 삶의 남루와 적막에서 더 생동하며 도약한다. 그게 ‘온몸으로 길을 트며’ 나아가려는 시인의 방식으로 느껴진다”며 이 시를 추천했다.

“노향림의 시는 외따롭고, 아득하고, 희미하게 번져가는 풍정들에 대한 하염없는 연민과 동경으로부터 나온다. 문체와 신체가 따로 놀지 않고 서로를 향해 파고들며 환하게 욱신거리는 말들! 점자를 짚듯 한 자 한 자 체온을 얹어보고 싶다.” 손택수 시인의 추천사다.

이건청 시인은 고운기 시인의 시집 ‘구름의 이동속도’(문예중앙)를 추천하며 “(고운기는) 삶의 지근거리에서도 새로운 발견의 세상을 찾아낸다. 때로는 각성이고 위로이며 희망이기도 한 시인의 말들이 눈 시린 언술이 되어 빛을 발하고 있다”고 평했다. 김요일 시인은 신동옥 시인의 시집 ‘웃고 춤추고 여름하다’(문학동네)를 추천했다. “악공이자 아나키스트 기타리스트인 신동옥이 발명해낸 문장의 세계는 새롭고 낯설면서도 아름답다. 이토록 먹먹한 전율은 실로 오랜만이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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