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배우들은 오버연기 좀 그만하고 연출가는 젊은 극작가 기 죽이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6일 03시 00분


■ 2년 한국 체류 佛 연극학자 파트리스 파비스

2년간 한국에 체류하며 300편이 넘는 공연을 지켜본 파트리스 파비스 교수. 그는 “한국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젊고 창의적인 연극인이 많으며 개방적인 풍토를 지녔다는 점에서 앞으로 ‘좋은 연극’을 많이 탄생시킬 것”이라는 덕담도 아끼지 않았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년간 한국에 체류하며 300편이 넘는 공연을 지켜본 파트리스 파비스 교수. 그는 “한국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젊고 창의적인 연극인이 많으며 개방적인 풍토를 지녔다는 점에서 앞으로 ‘좋은 연극’을 많이 탄생시킬 것”이라는 덕담도 아끼지 않았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한국 배우들은 오버연기 좀 그만하고, 연출가들은 젊은 극작가들 기 좀 죽이지 마세요.”

한국에 2년간 체류하면서 300편 넘는 한국 연극을 지켜본 프랑스 연극학자 파트리스 파비스 교수(65). 파리 제8대학 연극학과 교수로 20년간 재직하다 지난해부터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극원 초청교수로 재직해온 그는 21일 프랑스로 귀국한다.

그가 3일 남산예술센터에서 ‘프랑스와 한국, 두 나라의 새로운 글쓰기’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이 강연에 100명 가까운 연극관계자가 몰렸다. 한예종 학생들 공연은 물론이고 대학로 소극장에서 이뤄지는 공연까지 매주 두세 편씩 관람해온 그의 성실함에 대한 입소문 때문이었다.

지난달 30일 한예종에서 그를 미리 만났다. 독일 브레히트 연극과 포스트드라마 연극이론을 전공한 그의 발표문을 미리 입수해 읽은 뒤였다. 발표문은 점잖은 톤으로 최신 한국 연극과 프랑스 연극을 주로 희곡 중심으로 분석했다.

발표문에서 두 나라 연극의 공통점으로 제시한 키워드는 ‘내면성’과 ‘말 연기하기(tellacting)’였다. 여기서 내면성은 매우 내밀한 경험을 토대로 개인의 밑바닥까지 도달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그는 김명화의 ‘돐날’과 최진아의 ‘예기치 않은’, 그리고 올해 국제공연예술제 초청작인 ‘사랑을 끝내다’를 비교하면서 이 같은 징후를 읽어냈다. 하지만 차이도 존재한다. 그는 프랑스 연극의 내면성이 ‘자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한국 연극의 내면성은 ‘얼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정확히 그 차이가 뭘까.

“프랑스 연극에선 자아의 가장 치졸한 모습까지 들춰내려는 집요함이 엿보이지만 한국 연극에는 체면을 중시하는 동아시아적 전통 때문인지 끝까지 치부를 드러내기를 주저하는 태도가 존재합니다.”

‘말 연기하기’란 과거 스토리의 재현에 초점을 맞춘 드라마적 연기(acting)와 극적 강박에서 벗어난 자연스러운 이야기하기(telling)의 결합을 뜻하는 그의 조어다. 그는 “과거 스토리의 재현을 중시하는 드라마연극이 쇠퇴하면서 ‘이야기하기의 귀환’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미래의 연극은 스토리의 재현에 초점을 맞춘 리얼리즘 연극이 아니라 드라마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말 연기하기 연극으로 바뀌어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의 분석이 너무 점잖았기 때문에 “외국 관객들은 보통 한국 연극의 강점으로 역동적 배우를, 약점으로 희곡을 꼽는다”는 말을 흘렸다. 노학자는 발끈했다.

“정반대예요, 반대. 한국 배우들은 너무 리얼리즘 연기에 젖어서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 큰 고민 없이 연기하고 있어요. 리얼리즘 연기야말로 관객의 즉각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가장 안이한 연기입니다.”

또 그는 한국의 젊은 극작가들은 창의적인데 노련한 연출가들이 그들의 희곡을 너무 함부로 다루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에서도 1970년대∼1990년대 초까지 ‘연출가의 연극’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향이 비싸고 화려한 연극만 낳았다는 반성을 불러왔죠. 요즘은 작가 연출가 배우의 공동작업이 더욱 강조되고 있습니다. 극작가를 중시하는 풍토가 마련돼야 좋은 연극이 많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파트리스 파비스#연극#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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