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배우 이봉련(32·사진)이 기자에게 각인된 것은 5월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본 창작뮤지컬 ‘식구를 찾아서’에서다. 대구 사투리를 구수하게 사용하는 70대 박복녀 할머니를 어찌나 실감나게 연기하는지 ‘저 할머니 배우 대체 누구지’ 싶었다. 알고 보니 30대 초반의 그였다. 얼굴을 알고 보니 이봉련은 여기에도, 또 저기에도 있었다.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셋집 주인할매(뮤지컬 ‘빨래’)였고, 벌 연구학자(지난해 말 연극 ‘벌’), 형부와 바람난 시골 아낙(올해 연극 ‘전명출 평전’), 심지어 깜찍한 17세 여고생(현재 국립극단에서 공연 중인 연극 ‘빨간 버스’)까지 자연스럽게 소화하고 있다. 국립극단 삼국유사 시리즈의 첫 작품 ‘꿈’에선 아예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변신의 귀재 관음보살로 나왔다. 올해 스크린에서는 10대 후반의 궁녀(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연쇄살인범 팬클럽 회장인 여고생과 전화 속 할머니(‘내가 살인범이다’)로 출연했다.
“할머니 역할은 2008년부터 ‘빨래’에서 할머니를 맡아 그 이미지가 강한 것 같아요. 여고생은 단발의 헤어스타일 덕을 보는 것 같고요. 연기는 아직 멀었어요.”
실제 나이도 뜻밖이지만 경력도 의외다. 대구예술대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중앙대 사진학과 대학원을 수료했다. 공연계에 발을 들인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대학원 다닐 때 저녁에 할 것도 없고 해서 집 근처 한 대학 사회교육원의 뮤지컬과를 취미 삼아 다녔어요. 강사였던 김동연 연출가가 대학로에 공연을 올리는 데 조연출로 도와달라고 해서 참여한 게 시작이었죠.” 그 해인 2005년 극단 오늘의 음악극 ‘사랑에 관한 다섯 개의 소묘’에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했다. 대역배우(언더스터디)로 투입됐다가 그 배역의 배우가 한 달 빠지면서 갑작스레 무대에 섰다.
2008년 오디션을 통해 뮤지컬 ‘빨래’의 주인할매 역을 따낸 뒤 3년간 공연하면서 대학로에서 인지도를 높였고 지난해부터 폭발적으로 출연작이 많아졌다.
트레이드마크인 사투리 실력은 무조건 듣고 따라하는 것으로 키웠다. 포항 출신이지만 대구에서 대학 다닐 때 라디오와 TV를 교재삼아 연습해 서울 표준말을 서울 사람처럼 구사할 정도가 됐다고 했다.
“연기력이 부족해 ‘어떻게 이 실력으로 배우 하나’ 막막하던 시절도 있었어요. 지금은 출연작이 많아지니 자연스럽게 ‘이제 배우로 늙어가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스타’는 꿈도 안 꾼다고 했다. “제 외모에 맞게,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을 폭넓게 연기하고 싶어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