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황옥(許黃玉)은 역사에 기록된 한반도 최초의 결혼 이주 여성이다. 아유타국(인도)의 공주였던 그는 기원후 48년 16세에 바다를 건너와 가야국 김해 김씨 수로왕의 왕후가 된다. 허황옥은 10명의 아들을 낳았음에도 이 땅에 자신의 성이 전해지지 않음을 슬퍼했다. 그러자 수로왕은 두 아들을 ‘김해 허씨’로 성을 바꾸도록 했다.
허황옥의 흔적은 족보에서도 확인된다. 김해 김씨 족보는 수로왕과 허황옥의 결혼 이야기가 담긴 가락국기를 수록하면서 그가 시조모(始祖母)임을 명시했다. 김해 허씨 족보에는 왕후가 낳은 두 아들의 이름이 나온다. 그렇게 허황옥은 한국인의 ‘어머니’가 된 것이다.
한국족보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이 공동으로 주최한 ‘내 이름은 폴른칫 그리고 현수 엄마’는 역사 속 결혼 이주 여성과 다문화사회의 흔적을 살펴보는 기획전이다. 내년 2월 28일까지 대전 중구 한국족보박물관에서 열린다.
전시는 결혼 이주와 귀화, 그리고 다문화사회가 오늘날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 실재했던 현상임을 여러 가문의 족보를 들어 설명한다. 화산 이씨의 시조는 고려 때 귀화한 안남국(베트남) 왕자 이용상이다. 공자의 53세손 공소는 고려 공민왕 때 원나라 노국 공주와 함께 이 땅에 와 곡부 곡씨의 시조가 됐고, 조선 세종 때의 과학자 장영실은 5대조가 원나라에서 귀화했다. 임진왜란에 출전한 일본인 사야가는 조선에 귀화한 후 김충선으로 이름을 바꾸고 사성 김해 김씨 가문을 열었다.
전시에서는 족보와 함께 태국 출신의 폴른칫을 포함해 결혼 이주 여성 25명의 소장품 500여 점도 선보인다. 웨딩드레스부터 반지, 전통의상, 셔츠, 가방, 여권, 양념, 프라이팬 등 종류도 다양하다. 신민호 한국족보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족보를 통해 이 땅의 어머니가 ‘된’ 여인들의 역사와, 이주 여성의 물건을 통해 이 땅의 어머니가 ‘될’ 여인들의 역사를 함께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시는 국립민속박물관이 올해부터 지역의 공·사립 박물관과 함께 진행하는 ‘지역 순회 공동 기획전’의 일환으로 기획됐다. 총 4가지의 공동 기획전에는 5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제주 민속자연사박물관과 함께 한 ‘신들의 땅, 제주-히말라야 샤머니즘의 만남’전은 23일까지, 충남 보령석탄박물관과 함께 한 ‘보령 남포벼루와 문방가구’전은 30일까지 해당 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열린다. 대구 자연염색박물관과 함께 한 ‘전통에서 새 옷으로 갈아입은 우리 보자기’전은 9월 23일 폐막했다.
‘지역 순회 공동 기획전’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예산은 올해보다 1억 원 많은 6억 원이 책정됐다. 02-3704-3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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