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혼(魂)이라고 불린다. 오랜 세월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노랫말로 전승되어온 아리랑에는 한국인의 삶과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각계각층의 사람들로부터 아리랑에 얽힌 사연을 들어보았다. 》 ▼ 전국민에 의해 전승 큰 의미… 아리랑 세계화 노력 지속 ▼ 전통문화의 세계화를 추진해온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59)
“우리 한민족의 대표 민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소수 전승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 국민에 의해 전승되어온 무형유산으로는 처음으로 등재된 것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 등재를 통해 아리랑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이 간직해온 다른 무형유산에 대해서도 국내외 인식이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 정부는 문화재청을 비롯한 유관기관과 전 국민과 함께 힘을 모아 아리랑의 세계화 등 우리 전통문화를 세계인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이다.” ▼ 록 버전 편곡한 아리랑으로 2002월드컵 응원 기억 새로워 ▼
아리랑을 록 버전으로 재해석해 부른 가수 윤도현(40)
“YB(윤도현밴드)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록 버전의 아리랑을 응원가로 불러왔고 음반에도 수록했다. 우리나라 전통 노래 중 누구나 알고 있고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을 때 YB 멤버 전원이 만장일치로 떠올린 곡이 아리랑이었다. 록 음악으로 편곡한 아리랑은 기대 이상으로 기운이 나게 해주는 그 어떤 힘이 느껴졌다. 공연장에서 관객들과 함께 아리랑을 부르며 대한민국 국민이 하나 되는 모습을 지켜본 것은 짜릿한 경험이었다. 아리랑이 앞으로도 계속 세계로 퍼져 나갔으면 좋겠다.” ▼ 세계 전통민요와 어깨 나란히… 그 감동 세상 곳곳에 전해야 ▼
아리랑 관련 자료 수집과 연구에 바친 26년,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49)
“아리랑은 내 인생에서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도전’을 의미한다. 독어독문학을 전공한 나는 1986년 아리랑을 독일어로 번역하다 한계에 부딪혔다. ‘발병 난다’는 말의 뜻을 운율에 맞게 독일어로 번역하려면 훨씬 깊이 공부해야 했다. 그때부터 아리랑을 파고들었다. 아리랑 관련 책 음반 사진 엽서를 모았다. 정선아리랑을 알리려 ‘정선아리랑학교’도 세웠다. 아리랑은 이제 세계적 전통 민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아리랑이 한국인에게 감동을 주었듯이 앞으로는 우리가 아리랑의 주인으로서 세계인에게 그 감동을 전해야 한다.” ▼ 중국 이주때 아리랑도 따라와… 고국의 그리움 달래준 망향가 ▼
중국 옌볜에서 아리랑을 소재로 시를 써온 조선족 동포 리상각 시인(76)
“강원 양구군의 가난한 집 외아들로 태어난 나는 세 살 때 부모님과 함께 중국으로 이주했다. 척박한 땅에서 먹고살 것이 없어 땅이 흔한 중국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였다. 내가 부모님을 따라 중국으로 갈 때 아리랑도 우리 가족을 따라왔다. 중국에 정착하느라 숱한 고생을 할 때 고국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준 것이 아리랑이었다. 한국에 뿌리를 둔 우리에게 아리랑은 슬퍼도 부르고 기뻐도 부르는 노래다. 나를 비롯해 옌볜(延邊)의 조선족 시인들은 아리랑을 노래한 시를 우리말로 아주 많이 써왔다.” ▼ ‘아리랑 유랑단’ 대학생팀 꾸려… 내년 14개국 돌며 공연 계획 ▼
아리랑을 알리기 위한 세계일주를 앞둔 대학생 문현우 씨(25)
“말레이시아에서 조기유학을 했던 초등학교 시절, 한국의 청소년 국가대표 축구팀이 출전한 경기를 관람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응원구호가 없던 당시 교민들은 응원가로 아리랑을 불렀다. 아리랑으로 모두가 하나 됨을 느낀 순간이었다. 관광경영학을 전공하면서 외국인들에게도 아리랑을 알리면 세계인과 하나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나를 포함한 대학생 4명이 ‘코리아 아유(아리랑 유랑단) 레디’ 팀을 꾸렸고, 내년 3월부터 109일간 14개국 28개 도시를 돌며 대금 및 단소 연주와 서예 등을 통해 아리랑을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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