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표적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3)의 팬이라면 제목이 다른 이 두 장편소설이 같은 책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같은 책이 경쟁한다니, 무슨 말일까.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은 1987년 일본에서 출간돼 ‘하루키 신드롬’에 본격적인 불을 붙였다. 이 인기에 힘입어 국내에서도 1988년 저작권 계약이 되지 않은 상태로 3개 출판사가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했지만 반응이 시원찮았다. 문학사상사는 1989년 하루키와 정식 저작권 계약을 한 뒤 ‘상실의 시대’로 이름을 바꿔 재출간했다. 첫해 30만 권의 판매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모았다. 이 책은 출간 20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해마다 3만 부가량 판매되는 스테디셀러다.
그러나 민음사가 두 달 전 하루키 측과 ‘노르웨이의 숲’ 출간 계약을 했다. 문학사상사도 ‘상실의 시대’를 계속 펴낼 예정이다. 같은 내용이지만 제목이 다른 책이 나란히 출간되는 셈이다.
이 기이한 상황이 가능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회복저작물과 출판권’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 지적재산권협정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베른협약에 따라 그해 저작권법을 개정했다. 즉, 개정법 이행 전에 출간된 저작물을 ‘회복저작물’로 정하고 원작자에게 일정 보상을 하면 계속 출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문학사상사는 하루키와 정식 계약을 했지만 원제와 달리 ‘상실의 시대’란 제목을 달았다. 하루키는 한국 독자들의 반응에 감사했지만 원제대로 책이 출간되지 않은 것을 불편하게 여겼다. 이에 문학사상사와의 계약기간이 종료되자 다른 출판사와 접촉했고 민음사와 정식 계약을 하게 된 것. 문학사상사는 하루키와의 계약은 끝났지만 저작권법 개정 이전 ‘상실의 시대’를 출간했기에 ‘회복저작물’ 인정을 받아 출간을 계속할 수 있다.
민음사는 새로운 번역으로 2013년 9월 ‘노르웨이의 숲’을 펴낼 예정이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이전 ‘상실의 시대’로 나온 책에 비해 ‘고급화 전략’을 사용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노르웨이의 숲’이란 제목은 ‘상실의 시대’에 비해 국내 독자에게 낯설다. 문학사상사도 하루키의 요구에 따라 2000년대 초 ‘상실의 시대’란 제목을 버리고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했지만 판매가 저조하자 제목을 ‘상실의…’로 되돌린 바 있다.
‘노르웨이의 숲’ 판권이 시중에 나온다는 소식에 국내 출판사들의 관심은 높았다. 한 출판사 대표는 판권료에 대해 “민음사가 22만 달러(약 2억3700만 원)를 냈다”고 했고 다른 출판사 관계자는 “2억 원 이상 부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 대표는 “그보다는 낮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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