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WISDOM]야구판 최고 타짜는 김 감독? 이 감독?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5일 03시 00분


장환수의 스포츠 구라젝트

야구는 속고 속이는 멘털 게임이다. 투수는 공 하나를 던질 때마다 타자를 기만한다. 이에 맞서는 타자는 힘찬 스윙에 앞서 투수의 마음부터 읽어야 한다. 주자가 도루를 하려면 빠른 발도 중요하지만 투수의 공 배합과 투구 동작을 훔치는 게 먼저다. 야구 감독은 흔히 승부사로 불린다. 3시간 남짓 동안 대략 300번의 크고 작은 승부를 지휘한다. 그래서일까. 야구를 야바위라고 부르는 야구쟁이들이 있다. 야바위는 사기, 가짜, 협잡 등과 비슷한 말이다. 쉽게 말해 노름이다. 이들은 일상에서도 유난히 내기를 즐긴다.

김동엽 감독과의 훌라 게임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렸던 김동엽 감독. 그는 “내가 죽거든 딴것 필요 없어. 관 속에 화투와 카드 한 모씩만 넣어주면 돼”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이 말은 15년 전 독신자 아파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그의 유언이 됐다. 화려한 쇼맨십과 가시 돋친 달변으로 유명했던 그는 노름 스타일 또한 독특했다. 말년엔 외로웠던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자주 들러 기자들과 어울렸다. 그는 매번 판돈으로 현금 대신에 1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달랑 내놓았다. 그러곤 이 돈을 다 잃을 때까지 외상이었다. 노름 실력은 탁월한데 잃어도 돈을 주지 않으니 상대는 제풀에 꺾일 수밖에 없었다.

매너는 별로였어도 항상 승리했던 김 감독은 딴 돈의 대부분을 돌려줬고 눈곱만큼의 전리품만 챙긴 뒤 기자들과 함께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레몬소주 집으로 향했다. 당시 김 감독은 현직을 떠난 지 오래됐지만 걸핏하면 중도 해임됐던 인생 경험과 걸쭉한 입담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강사로 군림하고 있었다. 수입도 웬만한 현역 감독 못지않았다. 요즘으로 치면 김성근 감독이 그 바통을 이어받고 있는 셈이다.

1999년 한화의 첫 우승을 이끈 이희수 감독은 고스톱 타짜였다. 비슷한 실력의 멤버들끼리 어울리면 한 판 치는 데 1분이 채 안 걸렸다. 바둑처럼 복기도 하는데 눈 깜짝할 새에 승부의 분수령까지 명쾌한 해설이 나왔다. 이상국 전 KBO 사무총장은 하수들을 갖고 놀았다. 일부러 주위에서 볼 수 있게 손 기술을 쓰는데 정작 같이 붙고 있는 상대들은 붉으락푸르락하면서 알아차리지 못하니 좌중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국민 사령탑’ 김인식 감독도 앞의 분들과 같은 반열이라는 소문은 있었으나 직접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다만 김 감독의 무시무시한 수덕(手德)을 목격한 적은 있다. 용병 도입 첫해인 1997년 초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트라이아웃 캠프에서의 일이다. 저녁에 마침 시간이 나 동행한 카지노에서 잭팟을 알리는 빨간 사이렌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고개를 돌려보니 김 감독의 슬롯머신이었다. 카지노 측에선 “제법 큰 금액인 데다 외국인이니 세금 계산을 하려면 여권이 필요하다, 사진을 찍어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며 부산을 떨었다. 타짜는 실력과 수덕을 겸비한다는 말이 생각난 하루였다.

강적 일본 초토화해 ‘카지노 파문’ 탈출한 구대성
타짜를 논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이가 ‘풍운아’ 구대성이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야구 대표팀의 카지노 파문은 충격파가 대단했다. 당시 카지노 측에선 구대성이 풍기는 범상치 않은 포스를 느끼고 이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투수라는 답이 돌아오자 그러면 VIP룸으로 올라가겠느냐고 했다. 주위의 눈도 있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시드니에선 가진 돈의 액수와는 상관없이 유명인사에겐 VIP룸이 개방되는 모양이었다. 이후 어떻게 됐을까. 결과부터 밝히면 여러분들의 기대와는 달리 구대성의 노름 실력은 그의 바둑 급수(7급)만큼이나 그저 그랬다. 공격 일변도로 무지막지하게 지르던 그는 얼마 못 가 대마를 잡히고 손을 들고 말았다.

다음 날 카지노 파문 기사가 터졌고 야구 대표팀은 벌집이 됐다. 이때 한국 야구를 수렁에서 건진 영웅 역시 구대성이었다. 일본과의 예선전에서 6이닝을 던져 승리투수가 된 그는 겨우 사흘간 휴식을 취한 뒤 열린 일본과의 3, 4위전에선 혼자 공 155개를 던지며 완투승을 거둬 한국에 사상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어디서 그런 괴력이 나오는지…. 당시만 해도 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건 이변에 가까운 일이었다. 국민의 비난 여론은 눈 녹듯 사라졌고 야구 대표팀의 외출 금지령은 비로소 풀렸다.

구대성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주는 수많은 일화 가운데 하나만 더 소개해보자. 구대성은 충남중 3학년 때 대전고 입학을 앞두고 연초에 신일고와의 연습경기에 선발로 등판했다. 1회 결과는 볼넷-볼넷-볼넷, 그리고 삼진-삼진-삼진. “긴장이 돼서 그랬느냐”는 감독의 질문에 “그냥 한번 형들을 상대로 테스트를 해보려고 그랬다”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다. 구대성은 이미 어릴 때부터 승부 자체를 즐기는 타짜였던 것이다.

야구쟁이들이 노름한 얘기를 쓰다 보니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처럼 길어졌다. 아직 할 얘기가 많으니 다음 회에 한 번 더 쓰기로 하겠다. 다만 두려운 것은 이 글로 인해 야구인들이 취미로 즐기는 내기가 불법 도박으로 오해될까 하는 점이다. 메이저리그에선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포커를 치는 것쯤은 용인된다. 구대성이 경기를 앞두고 송진우와 바둑을 즐겼던 것처럼 말이다.

스포츠칼럼니스트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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