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드레스, 빛나는 연미복으로 한껏 멋을 내고 모임을 갖는 서양식 파티는 이제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흔한 문화 코드가 되고
있다. 상류층이나 트렌드세터가 아니라도 회사 동료나 친구들끼리 드레스코드를 정해 송년회에 참석하는 풍경이 심심찮게 보인다. 늘
단정하게 블라우스 단추를 끝까지 채웠던 오피스 레이디도, 이 세상에서 가장 조신한 패션을 추구했던 ‘청담동 며느리’도 과감해지는
계절. 바야흐로 PARTY TIME!
▼화려함의극치, 바로크 시크 향연을 빛내다▼
기자가 난생처음으로 그럴듯한 파티 드레스를 구입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년도 훌쩍 전인, 사회 초년병 시절이었다. 루이뷔통
초청으로 태국 출장길에 오르기 전 브랜드 담당자가 “성대한 파티가 있으니 꼭 칵테일 드레스를 준비하라”고 당부했다. 출장 바로
전날 이 소식을 듣고 급한 마음에 백화점으로 달려갔다. 그리곤 반짝이는 시퀸 소재 장식이 군데군데 달린 순백색 드레스를 덜컥 사고
말았다.
순백색 드레스를 소화하기 위해선 다른 준비물이 그토록 많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레스 값을 치르고 이미 한
차례 집에서 입어 보고 난 뒤에야 깨닫게 됐다. 같은 행사에 참석한 외국 기자들로부터 “신부처럼 하얗고 순수해 보인다”는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평가를 들었지만 그 이후엔 단 한 번도 꺼낼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큰 맘 먹고 산 드레스는 세월과, 마음속
미련의 무게만큼 때가 탄 끝에 아직도 옷장 한 구석을 자리하고 있다.
이후 드레스를 입어야 할 자리엔 그보다 훨씬 더 적은 예산으로 구입한 리틀 블랙 드레스가 동행하게 됐다. 약간의 화려한 주얼리만 함께 갖춘다면 순백의 드레스보다 더 튀고, 게다가 오래 입을 수 있는 실용적 아이템이다.
그제야 깨달았다. 여자가 파티 드레스를 고를 때는 평생의 반려자를 고르는 것만큼이나 신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화려하고 멋진 파티
공간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거나 과거 인연을 더 돈독히 하는 데 드레스는 적잖은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니 올 연말 파티 드레스를 아직 구하지 않았다면 몇 가지 리스트는 체크해 보시길. 행사의 드레스코드는 무엇인지, 드레스를 사는 목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빛날 준비가 돼 있는지.
○ 포멀 클래식
‘블랙 타이’라는 드레스코드와 맥락이 같은 ‘포멀 클래식’은 격식 있는 공식 행사에 통용되는 스타일이다. 연미복 차림의 남성 파트너와
함께할 만큼 우아하고 클래식한 느낌을 내는 것이 포인트다. 포멀 드레스는 디자인 자체가 화려하거나 색상이 튀는 것보다 무난한
색의 드레스 위에 모피를 곁들이거나 화려한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함께 매치할 수 있는 것이 좋다. 모델이 입은 ‘케이수 by
김연주’의 롱 드레스는 허리 부분에 새틴 소재 끈이 어우러져 있다. 민소매라 목 부분이 허전하게 느껴질 수 있는 만큼 목걸이는
대담한 크기의 제품을 고르는 것도 스타일링 노하우 중 하나. 대담한 목걸이는 레드카펫에만 오르면 갑자기 과감해지는 연예인들은
‘클리비지 룩(가슴 사이 계곡을 강조하는 패션)’을 뽐내기 위해 생략하는 경우가 많지만 ‘민간인’들에게는 노출된 목 부위를 다소
보완하면서 편안함을 느끼게 하는 요긴한 아이템이 된다. 섹시한 레드 클러치는 카르티에, 반지와 팔찌(뱅글)는 폴리폴리. 목걸이는
데렐쿠니.
○ 섹시 글램룩
요즘 핫한 파티들은 강남과 홍대앞 등에 포진한 클럽에서 자주
펼쳐진다. 좀 더 캐주얼한 분위기의 이런 파티장에서 ‘레드 카펫 스타일’ 롱드레스를 끌고 나간다면 모두들 한 번쯤 쳐다보지
않을지. 거리문화, 쾌락주의 등과 연관이 깊었던 1970년대 록 그룹 패션에서 영감을 받은 ‘글램룩’은 ‘글래머러스(화려한·매력이 넘치는)’라는 뜻을 차용한 표현. 현대의
‘글램룩’은 자유로운 히피 정신을 표방하면서도 여성의 몸매를 섹시하게 연출해주는 스타일로 표현된다. 가장 쉽고, 그리고 확실하게
‘글램룩’을 연출할 수 있는 방법은 흔히 시퀸 소재라 불리는 스팽글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평범한 디자인이라도 스팽글만 결합되면
당장 파티장 패션으로 변신할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 그렇다고 상하의를 모두 스팽글로 뒤덮어버린다면 트로트 가수의 공연복처럼
지나친 존재감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초록색 스팽글 장식 상의를 입은 모델은 조신한 A라인 블랙 스커트, 팔목을
감싸는 녹색 가죽 장갑을 곁들여 오버하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수납공간이 꽤 넉넉한 클러치형 핸드백까지 모두 ‘토리버치’. 반대로
스커트를 스팽글 장식으로 힘을 준 모델은 상의는 단정한 블랙 블라우스를 입고 그 위에 화려한 모피 소재 조끼를 입는 방식으로
‘글램룩’을 표현했다. 모두 DKNY, 목걸이는 ‘빈티지 할리우드’.
○ 바로크 시크
장식성이 강한 바로크 무늬는 이번 시즌 주요 패션쇼 무대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난 유행 패턴이다. 사치스러워 보이는 화려함, 장식적
요소가 많은 디자인들이 단연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불황에 대한 반발심 때문이었을까. ‘돌체앤가바나’ ‘발망’ ‘스텔라
맥카트니’ ‘알렉산더 맥퀸’ 등 주요 브랜드들이 일제히 바로크 스타일이 표방하는 ‘사치스러움’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바로크
스타일 패턴은 종종 자카드, 벨벳, 메탈릭 등 고급 소재들과 접목된다. 패턴과 소재 자체가 화려한 만큼 날씬해 보이기 위해서는
적절히 ‘절제의 미’를 발휘해야 한다. 주로 어두운 색상에 한두 가지 포인트 컬러만 사용하고,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주는 식의
방식이 적절할 듯. 모델이 입은 미니 드레스는 ‘오브제’, 뱅글과 귀고리는 ‘빈티지 할리우드’.
화려한 패턴의
황금색 드레스는 이번 시즌, 레드 카펫에도 자주 등장했던 아이템이다. 귀여워 보이기도, 우아해 보이기도 하는 미니 드레스 위에
평상시 오피스룩에도 잘 어울릴 듯한 시크한 블랙 재킷을 곁들이면 절제된 파티 패션을 즐길 수 있다. 원피스형 드레스는 DKNY,
재킷은 ‘케이수 by 김연주’, 팔찌와 귀고리는 ‘빈티지 할리우드’.
○ 레이디 라이크
1950, 60년대 유행했던 ‘레이디 라이크룩’은 고전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아이러니한 매력을 가졌다. 평생 물 한번
손에 안 묻혀 봤을 듯 우아한 옛날 귀족 여성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캣워크를 누비는 앳된 모델들의 가냘픈 몸매도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디테일은 장식적일지라도, 전체적으로는 참하고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기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특히 남자들이 좋아한다.
왼쪽 모델이 입은 반소매 미니 레이스 드레스와 시크한 초록색 클러치, 블랙 하이힐은 ‘토리버치’. 목걸이는 ‘데렐쿠니’, 반지는
‘폴리폴리’. 오른쪽 모델이 입은 ‘오브제’의 긴소매 레이스 드레스는 몸 안쪽 부분에 덧댄 붉은색 옷감이 은근히 비쳐
우아하면서도 섹시하다. 팔찌와 귀고리는 ‘빈티지 할리우드’.
▼ 화려한 목걸이… 블링블링 클러치… ▼ ○ 파티 퀸의 액세서리 콘셉트
사람들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여행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파티도 여행과 같다.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의 나를 만날
기회다. 즐거운 여행에 꼭 값비싼 유럽행 비행기 1등석 티켓이 필요한 게 아닌 것처럼 즐거운 파티에도 좋은 사람과 열린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
그 다음으로 필요한 게 있다면 패션. 괜찮은 액세서리 포인트로 적재적소에 힘을 주면 매번 새 옷을
입지 않아도 현명하게 스타일을 완성할 수 있다. 간호섭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과 교수는 “최근에는 파티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드레스업 할 일이 많아졌다”며 “퍼(모피)나 액세서리 등으로 포인트를 주면 색달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의
파티룩에서 가장 중요한 액세서리는 바로 ‘스테이트먼트 네클리스’다. 스테이트먼트의 사전적인 의미는 성명이나 진술. 하지만
패션에서는 나 자신을 말해주고 눈에 띄게 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스테이트먼트 네클리스란 결국 눈에 띄게 화려한 목걸이라는 뜻이다.
누구나 집에 한 벌 정도는 있는 검은색 원피스를 떠올려 보자. 결혼식장에도, 중요한 회사 미팅에서도 입을 수 있는 심플한
원피스다. 여기에 중세 공주가 좋아했을 법한 커다란 원석 목걸이를 하면 스타일이 확 달라 보인다. 아름다운 원석이 붙어 있는
랑방의 올 가을겨울 드레스를 떠올리게 할 수 있다. 스테이트먼트 네클리스는 좋은 보석이 아니더라도 독특한 디자인이라면 그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대의 다양한 제품 중에서 고르기만 하면 된다. 빈티지 할리우드의 볼드한 블랙 목걸이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신진 디자이너들이 운영하는 코스튬 주얼리 인터넷 쇼핑몰에서 10만 원이 넘지 않는 가격대의 다양한 목걸이를
골라 살 수 있다.
▼ 와인잔 돋보이게 하는 칵테일 반지 ▼
다음은 반지에 눈을 돌려보자. 역시 값비싼 다이아몬드가 필요한 게 아니다. 와인을 마실 때 손을 더 돋보이게 해줄 색다른 디자인의
칵테일 링이면 족하다. ‘귀걸이보다 반지’ 바람을 몰고 온 50만 원대의 이브생로랑 ‘아티링’이 아니어도 된다. 어느 브랜드인지
알 수 없는 색다른 디자인의 칵테일 링은 대화를 시작할 수 있는 훌륭한 소재가 되기도 한다. 반지에는 뭔가 특별한 뜻이 담겨
있을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이제 발끝을 내려다볼 차례다. 아무리 화려하게 입었다 한들 굽
낮은 플랫슈즈를 신을 수는 없다. 파티 슈즈라고 무조건 화려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전체 룩과의 조화. 심플한 옷차림이라면
파치오티의 주얼리 슈즈처럼 화려한 신발로 포인트를 주고, 옷 자체에 비즈와 보석 장식이 많다면 슈즈는 심플한 스틸레토 힐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파티에서도 지나침은 모자란 것보다 못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파티의 필수 액세서리는
클러치. 립스틱 하나 겨우 들어갈 만한 크기의 작은 클러치라도 반짝이는 클러치는 ‘파티 룩’임을 알려주는 패션의 마침표 역할을
한다. 제이에스티나는 하트 형태의 반짝이는 클러치, 해골 무늬가 들어간 클러치 등을 내놨다.
글=김현진·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bright@donga.com 사진=김덕창 포토그래퍼(studio DA) studioda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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