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작가이자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그림 ‘뉴턴’(1795년)에서 뉴턴은 몸을 완전히 굽힌 채 바닥의 종이에 컴퍼스로 그린 도형을 쳐다보고 있다. 실제 그 자세로 도형을 그린다면 허리는 끊어질 듯하고 얼굴에는 피가 쏠릴 것이다. 블레이크가 뉴턴에 대한 존경의 뜻으로 그린 그림이 아님을 시사한다. 그림에서 뉴턴은 단순한 도형이 세상의 이치를 담은 진리라고 믿는 듯 진지해 보인다. 블레이크는 뉴턴이 복잡한 세상을 기하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은, 단순한 사람이었음을 전하려는 속셈이었다. 블레이크는 “신이여, 제발 우리를 깨어 있게 해주옵소서. 외눈박이 시각과 뉴턴의 잠으로부터…”라고 뉴턴을 비판했다.
재미있는 것은 영국 국립도서관 앞에 블레이크의 그림을 본뜬 조형물 ‘뉴턴’이 설치돼 있다는 점이다. 영국의 대표 과학자를 폄하한다며 철거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았지만 결국 이 조형물은 지금도 도서관을 지키고 있다. 뉴턴의 과학뿐 아니라 과학만능주의를 경고했던 블레이크의 인문정신 역시 영국이 자랑하는 전통이라는 결론 때문이었다.
명화를 통해 그 시대의 사회, 문화, 인물 이야기를 풀어내는 책은 넘쳐나지만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인 저자는 그림에서 과학의 역사를 읽어내는 신선한 시도를 했다. 회화뿐 아니라 과학자들이 펴낸 책의 표지 그림, 권두화(책의 첫 장에 그린 그림), 스케치 등을 통해 과학사를 펼쳐냈다. 기하학적 세계관의 문을 연 플라톤에서부터 과학 혁명기를 빛낸 갈릴레이, 케플러, 뉴턴, 18세기 후반 화학혁명을 이끈 라부아지에 등의 과학 이야기를 컬러 도판과 함께 담았다.
갈릴레이가 천문학 저서 ‘시데레우스 눈치우스’(1610년)를 출간하기 전까지 유럽인들은 달의 표면이 수정구처럼 매끄럽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우주관에 따라 지상계와 천상계의 경계에 위치한 달은 완벽한 존재로 여겨졌고, 기독교 전통에서도 달은 성모 마리아의 처녀성을 상징하는 흠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갈릴레이는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한 뒤 이 책에 표면이 울퉁불퉁한 달 그림을 실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기독교 세계관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도전이었다.
그의 친구인 화가 치골리는 이탈리아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동정녀 마리아의 벽화를 그려 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 갈릴레이의 주장에 따라 마리아가 올라선 달의 표면을 울퉁불퉁하게 그려 넣었다. 1612년 작품 ‘성모 마리아’다.
화학자 라부아지에의 부인이 라부아지에의 산소 실험을 그린 그림에도 흥미로운 비밀이 있다.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규명하고 그 성질을 밝혔는데, 물질이 탈 때 작용하는 산소가 사람의 호흡에도 작용한다는 것을 보이는 실험을 했다. 가운데서 실험을 설명하는 사람이 라부아지에, 의자에 앉아 고무 마스크를 쓰고 실험대상이 된 사람은 그의 친구인 세갱, 오른쪽에서 실험 과정을 그리는 이가 라부아지에 부인이다. 그런데 왼쪽 구석에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존재감 없이 어둡게 묘사돼 있다. 바로 실험을 돕는 조수다. 저자는 과학의 발전은 유명 과학자뿐 아니라 그 뒤에 가려진 수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과학 대중서다.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과학에 접근해 인문학과 과학이 자연스럽게 융합된 수작으로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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