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1997년 영화 ‘가타카’가 떠올랐다. 유전자 분석이 일반화된 미래를 그린 영화다. 신생아들은 유전자에 따라 직업을 부여받는다. 주인공 빈센트(이선 호크)는 31세에 죽을병에 걸리는 최악의 유전자를 타고나지만 과학에 기초한 견고한 사회 시스템에 맞서 불굴의 노력으로 최상의 유전자를 가진 사람에게만 허용되는 우주 비행사의 꿈을 이룬다.
유전자라는 지표를 맹신한 나머지 개개인의 남과 다를 수 있는 가능성, 즉 개성을 박탈하고 집단의 테두리 안에 가두는 영화 속 미래 세계는 이 책이 우려하는 ‘평균을 지향 또는 강요하는 사회’와 일맥상통한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유전적으로 타고난 것 때문에 방해받아서는 안 되며 직업을 결정할 때 오히려 유전자를 우습게 여겨야 한다고 말한다. 개인의 어떤 성공도 단 하나의 재능에 좌우되지 않으며, 재능에서 유전자가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적다는 이유에서다. 저자가 오스트리아의 빈 의과대 의료유전학연구소 소장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는 것이 좋겠다.
책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개성을 찾고 이를 극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성이 만발한 사회만이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획일화한 집단은 예상 못한 변화에 무력하다. 무성생식으로 개체를 무한 복제하는 히드라는 서식지의 온도 변화라는 사소한 위급 상황에서 전멸한다. 반면 19세기 초 맨체스터 주변 숲에 서식하던 자작나무나방은 이 지역의 급속한 산업화로 환경오염이 심해지면서 99.99%를 차지하던 밝은색 자작나무나방은 전멸하지만 0.01%를 차지하던 어두운 색 자작나무나방은 번성한다. 달팽이나 조개처럼 다양한 개성의 후손을 많이 남긴 종일수록 생존 가능성도 높다.
한국 사회란 얼마나 몰개성을 지향하는 사회인가. 특히 학교에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동료 집단에서는 따돌림의 대상이고 교사에게도 환영받지 못한다. 교육과 사회 시스템뿐만 아니라 개인 스스로도 안전하다는 이유로 다수의 편에 끼는 것을 선호한다.
이 책은 그런 사회, 그런 태도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자신만의 새로운 시도를 꿈꾸는 사람에겐 커다란 격려다. 저자는 ‘성과가 비개성적인 것이라면 성공이 아니라 실패’라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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