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c/리더의 취향]‘마지막 여행은 빈손’… 오지 여행하며 되새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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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8일 03시 00분


이충희 듀오대표

이충희 듀오 대표가 불교 신화가 조각된 그릇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이 그릇을 2009년 미얀마 여행 때 프랑스인 골동품상으로부터 구입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이충희 듀오 대표가 불교 신화가 조각된 그릇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그는 이 그릇을 2009년 미얀마 여행 때 프랑스인 골동품상으로부터 구입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이탈리아 패션브랜드 ‘에트로(ETRO)’를 수입하는 듀오의 이충희 대표(57)는 여행이 취미다. 34년째 패션 사업에 종사하면서 출장이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다닌 이 대표지만 매년 1월과 5월에는 꼭 부인과 단둘이 여행을 떠난다. 듀오를 설립한 지 10년째 되던 해인 2002년부터 계속해 온 부부 동반여행은 이 대표에게는 “바쁘게 살아온 스스로에게 주는 작은 선물”이다.》
내려놓기 위해 떠나는 여행


해외 패션브랜드 수입업체 사장이라는 직함 때문에 여행지도 선진국의 화려한 도시를 선호할 것 같지만 이 대표는 “문명화가 덜 된 오지(奧地) 여행이야말로 진정한 재충전의 시간”이라고 강조한다. 기차나 버스를 한 번 타려고 해도 4, 5시간 연착은 예사인 저개발 국가를 다녀봐야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힌두교도들이 신성한 강으로 여기는 인도의 갠지스 강을 다녀온 일은 이 대표에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강변에서는 거적으로 어설프게 싸맨 시신을 어깨에 걸쳐 멘 장례 행렬이 화장터로 향하고 있는데, 그 순간 강물 속에는 순례자들이 죄를 씻기 위해 열심히 몸을 닦고 있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인생이란 게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인도 여행은 이 대표가 2010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억 원을 기부하고 고액 기부자의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되는 데 하나의 계기가 됐다. “죽음은 결국 ‘빈손으로 떠나는 일’인데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가진 것을 다 쓰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말했다.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업을 하면서 얻은 ‘내게 없던 것’들을 필요한 이들에게 돌려줘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여행은 고객의 마음을 읽는 일”


여행은 이 대표에게 패션사업을 이어 나가기 위한 공부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페라가모, 구치, 에르메스 등을 유통하는 큰손인 ‘선 모토야마’사의 창업주 모토야마 회장과 함께했던 2009년 미얀마 여행이 바로 그런 경우다. 모토야마 회장은 이 대표의 듀오가 에트로의 한국 총판으로 선정되는 데도 큰 도움을 준 사람이다.

모토야마 회장과 함께한 미얀마 여행의 주제는 ‘석양(夕陽)’이었다. 그해 아흔 살을 맞은 모토야마 회장은 “함께 여행을 가려던 친구가 건강이 악화돼 혼자 여행을 떠나야 할 상황”이라며 이 대표에게 동행을 제안했다.

여행 기간 내내 두 사람은 하룻밤에 숙박비만 250달러인 미얀마의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묵었다. 매일 저녁 호텔 테라스와 고급 요트 선상으로 장소를 바꿔 가며 와인을 곁들인 식사를 하며 석양을 감상하고 모토야마 회장의 인생 이야기를 들었다. 미얀마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0달러에 불과한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호화여행이었다.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여행을 할까’라는 궁금증이 들 즈음 모토야마 회장은 이 대표에게 “좋은 호텔에서 최고급 음식을 먹는 게 내가 추구하는 여행”이라고 말했다. 그 이야기에 이 대표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부자들을 상대로 패션을 팔려면 그들이 입고, 먹고, 즐기는 것들을 모두 경험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을 노(老)기업인은 그에게 몸소 가르쳐 준 것이다. 모토야마 회장이 여행 기간에 아침저녁으로 새 옷을 입고 구두마저 갈아 신은 것도 패션업계 종사자로서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으려는 노력이었다는 생각을 했다.

골동품 수집은 여행의 또 다른 재미

서울 강남구 청담동 듀오 본사 6층에 있는 이 대표의 사무실과 회의실은 작은 박물관이다. 이 대표가 여행과 출장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 모은 골동품과 그림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곳곳에 쌓여 있다.

이 대표는 “수집은 아버지에게 배운 취미”라고 말했다. 1960년대 서울 인사동의 골동품 가게를 돌며 별전(別錢·노리개로 쓰이던 장식용 동전)과 동경(銅鏡·구리거울)을 사 모으던 아버지의 취미가 어느새 그 시절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들어 버린 이 대표에게 유전된 것이다. 그는 “여행지의 벼룩시장이나 화랑에서 마음 가는 대로 사들인 골동품들을 바라보면서 ‘이게 엄청난 보물일 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푸근해진다”며 웃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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