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독서 대국’이다. 지하철을 타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과 책을 든 사람 수가 비슷할 정도다. 그런 일본에서 올해 100만 권 이상 팔린 책이 하나도 없었다. 각종 순위를 조사하는 오리콘이 2008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밀리언셀러가 한 권도 없기는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해에는 7개 작품이 연간 판매량 100만 권을 넘었다.
나가에 아키라(永江朗) 와세다대 교수는 요미우리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밀리언셀러가 없어진 원인을 “디플레이션 와중에 독자들이 싼 책을 찾는 경향이 심각해졌다. (가격이 낮은) 문고판이 나오길 기다리거나 중고 책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곤 한다”고 설명했다.
불황 중에 어떤 책들이 그나마 많이 팔렸는지 분야별 순위를 살펴봤다. 눈에 들어오는 제목 하나, ‘100엔의 콜라를 1000엔에 파는 법’(100엔은 약 1236원). 경영경제 서적 중 판매 2위를 차지했다.
저자 나가이 다카히사(永井孝尙) 씨는 일본IBM 소프트웨어 사업부 매니저다. 과거 IBM 연구소에서 상품 플래너로 일한 경험과 고객관계관리(CRM)를 담당했던 경험 등을 살려 경영서를 썼다.
책은 모두 10장으로 구성돼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 철도회사가 쇠퇴한 이유’, ‘고객 요구에 100% 응해도 0점’, ‘신상품은 반드시 팔리지 않는다?’ 등이다. 분류는 경영경제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8장 ‘100엔 콜라를 1000엔에 파는 방법’에는 실제 콜라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에서 캔 콜라 하나는 약 100엔. 하지만 장소에 따라서 가격 차이가 난다. 대량으로 판매하는 할인점에서는 50∼60엔 한다.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면서 조금이라도 싼 물건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경쟁력도 높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똑같은 콜라를 1000엔에 팔까? 저자는 리츠칼턴호텔 룸서비스 가격이 1035엔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캔 속에 든 액체는 똑같지만 맛은 분명 차이가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호텔에서 콜라를 주문하면 약 15분 후에 나온다. 가장 맛있는 온도로 냉장해 라임, 얼음과 함께 방으로 가져온다. 이때 고객은 검은 액체 콜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리츠칼턴호텔의 서비스를 콜라와 함께 맛본다. 그런 고객들은 웃돈을 주는 데 인색하지 않다.
저자는 할인점 콜라를 ‘프로덕트(product) 세일’, 호텔 룸서비스 콜라를 ‘밸류(value) 세일’이라고 이름 붙였다. 프로덕트 세일은 대량으로 생산, 공급할 수 있는 대기업에 적합하다. 철저하게 가격 할인을 목표로 한다. 반면 밸류 세일은 제품에 서비스라는 무형의 부가가치를 얹기 때문에 서비스 기업에 적합하다. 가격 할인보다는 서비스 향상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현재 일본의 백화점과 대형마트에서는 가격 파괴가 한창이다. 일반인들의 주머니는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의 가구당 연평균 소득은 1994년(664만 엔·약 8200만 원)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2010년에는 538만 엔(약 6650만 원)으로 2009년보다 2.1% 줄어들었다. 1987년 이후 최저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원가와 인건비를 줄여 어떻게든 가격 할인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정가보다 10배 더 받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시사점이 머리에 남는다는 게 이 책의 경쟁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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