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계사년(癸巳年) 새해가 밝았다. 올해에는 제18대 대통령의 취임으로 한국 첫 여성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 또 2008년 불에 탔던 국보 1호 숭례문이 5년 만에 복구되어 2월 새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 역사 속 계사년에는 전쟁이 발발했다 수습되는가 하면 찬란한 예술과 기록문화가 꽃을 피우기도 했다.
993년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자 고려의 외교관 서희는 거란의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지어 화친을 맺고 거란군을 철수시켰다. 서희는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강조하고, 거란과 송나라가 전쟁 중인 정세를 활용해 송나라와 관계를 끊는 대신 거란으로 가는 길목인 압록강 동쪽 280리 지역을 얻었다. 영토를 빼앗기기는커녕 얻어낸 것이었다. 이후 고려는 이 지역에 강동 6주를 설치했다.
임진왜란의 와중이던 1593년에는 전라도관찰사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크게 무찔렀다. 권율 휘하의 1만여 병력이 일본의 3만여 병력과 싸워 이긴 혁혁한 승리였다. 이 전투가 바로 진주대첩, 한산도대첩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대첩으로 불리는 행주대첩이다. 당시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짧게 잘라 입고 돌을 나르며 전투를 도운 데서 행주치마가 유래했다는 얘기가 알려져 있다.
지난 계사년인 1953년 7월 27일에는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 사령관 사이에 휴전협정이 조인됐다. 3년 동안 국토와 국민의 가슴에 크나큰 상처를 남긴 6·25전쟁을 중단한 사건이었다.
지금으로부터 600년 전인 1413년(조선 태종 13년) 계사년에는 조선왕조실록 편찬이 시작됐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 태조에서 철종까지 25대 472년간의 역사를 왕별로 기록한 편년체 사서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는 기본 사료가 된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및 국보 제151호로 지정돼 있다.
1653년 계사년에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소속된 선원 헨드릭 하멜이 일본 나가사키로 가는 길에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했다. 조선에서 억류와 노역, 생활고에 지친 그는 1666년 탈출해 1668년 고국으로 돌아가 기행문 ‘하멜 표류기’를 발표했다. 한국의 지리 풍속 군사 정치 교육 등을 유럽에 최초로 소개한 문헌이다.
역사 속 계사년은 우리의 예술이 한 단계 도약하는 해이기도 했다. 993년 만들어진 항아리 순화사년명호(淳化四年銘壺)는 초기 고려청자의 제작 상황을 밝히는 가장 확실한 유물로 평가받는다. 1713년에는 시·서·화에 빼어나 삼절(三絶)로 불린 표암 강세황 선생이 태어났다. 그는 조선 후기 화단에 한국적 남종문인화풍을 정착시키고 진경산수화를 발전시켰으며 풍속화와 인물화를 유행시켰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바로잡습니다]
본보 1일자 A20면 ‘전쟁이 끝나고 문화-예술의 꽃 피어나’ 기사와 표에서 한성순보가 창간된 1883년은 계사년이 아니라 계미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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