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로운 미성이 테이블에 놓인 라테 같았다. 하지만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그녀의 표정은 표독스러웠다.
“가사 속 ‘너’가 항상 나라고 생각하며 음악을 들어 왔어. 나이가 들어도 그의 팬일 수 있었던 이유야. 근데 이제는 그의 노래 속 ‘너’를 들으면 그녀(이지아)가 떠올라. 더는 서태지 따윈 듣고 싶지 않아!”
학창시절 그녀의 별명은 ‘태지 부인’이었다. 1990∼2000년대 초, 그녀 외에도 수많은 여자 팬들이 스스로를 태지부인이라고 불렀다. 그게 유행이었다.
잠잠하던 서태지가 최근 근황을 전해 왔다.
“가족과 오순도순 지낼 생각에 기대에 부풀어 있어. 한국에 정착을 하게 되는 셈인데 조금이라도 효도해야지.”(12월 25일 서태지 홈페이지)
서태지는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청담동 클럽에서 열린 데뷔 20주년 기념 파티 현장에 모습을 드러내는 대신 전화로 근황을 전했다. 여름이면 국내에서 공연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나름으로 빅뉴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일부 팬을 제외하고는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었다. 1996년 이후 외국에서 살아온 서태지가 국내에 정착하는 진짜 ‘컴백홈’은 몇 년 전이라면 떠들썩한 이슈였을 텐데….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뜨겁게 반응하던 분위기가 사라진 것이다.
최근 그녀를 광화문에서 다시 만났다. 달라진 팬심에 대해 그녀는 “나이가 든 탓도 있지만 2011년 4월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라고 했다. 이어 “가사에 우리의 마음이 다 들어 있더라고”라며 태지부인들의 심리를 서태지 노래로 표현했다.
“철저하게 속이고 살아온 인생엔 불만이 있어(지킬박사와 하이드). 됐어, 됐어. 이젠 그런….(교실이데아) 난 버림 받았어.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보기 좋게 차인 것 같아. 빌어먹을(필승). 너에게 모든 걸 뺏겨 버렸던 마음이 다시 내게 돌아오는 걸 느꼈지. 나만의 연인이라 믿어 왔던 내 생각은 틀리고 말았어. 이제는 너를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하여가). 내 속에서 살고 있던 널 죽일 거야(필승). 이젠 소용없어. 늦어 버린 거야(죽음의 늪).”
미련이 남는 듯 그녀는 마지막으로 “넌 내 옛 기억엔 단 하나의 내 일부인 걸(heffy end)”이라고 중얼거렸다. 태지부인과 헤어진 후 교보문고에 들렀다. 음반 매장에는 최근 발매된 ‘서태지&20스페셜’ DVD가 전시돼 있었다. 1990년대 콘서트 당시 모습을 담은 것이다. 태지부인 또래의 한 여성 손에 들린 ‘샤이니’ CD도 보였다. 아, 서태지도 추억 상품인 거야. 이유야 어쨌든 한물간 가수다.
태지부인들은 그렇게 떠났다. 하지만 서울 평창동 자택에 정착한다는 그는 아직 42세. 생활인으로도 음악인으로도 갈 길이 여전히 멀다. 서태지가 아니라 ‘서태지 음악’을 좋아하는 팬도 아직 많다. 태지 형! 외국에서 피터 팬 놀이 그만하고, ‘버뮤다’, ‘모아이’ 이런 뜬구름 잡는 거 그만하고, 한국에서 재혼도 하고 가족과 부대끼면서 가슴을 후벼 파는 진짜 노래 만들어 줘. 완성되면 ‘시꺼먼’ 남성 팬들과도 평창동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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