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일은 내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미래를 생각하고 걸려 넘어지는 일이라면 가능합니다.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은 넘어진 채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 무슨 지독한 자기혐오와 패배주의적 시각인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러브레터의 한 구절이라는 것. 그것도 세계적인 문호 프란츠 카프카(1883∼1924)가 쓴 편지다.
카프카는 펠리체 바워라는 여성과 1914년 5월 약혼했다. 하지만 두 달 뒤 파혼한다. 3년 뒤 카프카는 다시 이 여성과 두 번째 약혼을 하지만 다시 파혼한다. 모두 카프카의 ‘간청’에 의한 파혼이었다. 카프카는 극단적으로 사랑하거나 극단적으로 혐오하는 ‘양향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결혼을 위해 노력했지만 카프카는 평생 혼자 살았다. 34세에 객혈이 시작됐고, 41세에 결핵으로 사망했다.
카프카의 일기, 편지 등을 모은 ‘절망은 나의 힘’(한스미디어·사진)에는 카프카의 치열한 고민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카프카가 남긴 86개의 짧은 글에 일본 번역가인 가시라기 히로키가 일일이 설명을 달았다. 카프카에 대한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자료들이 많아 인간 카프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오늘날 ‘변신’ ‘성(城)’ ‘소송’으로 세계적인 작가가 됐지만 사실 생전 그는 외로운 작가였다. 릴케를 비롯한 몇몇 문인들의 관심만을 받았을 뿐 거의 무명에 가까웠다. 심지어 유언으로 “모든 원고를 소각해 달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로 작품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대표작인 ‘변신’에 대해선 일기에 이렇게 적기도 했다. ‘‘변신’에 대한 심한 혐오.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결말. 더이상 바닥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 당시 출장이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훨씬 잘 쓸 수 있었을 텐데….’
카프카는 자신의 작품 직장 연애 가족 등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봤으며, 지독한 열패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주변 상황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집은 부유했고 그 또한 ‘노동자상해보험협회’라는 든든한 직장에 다녔다. 하지만 지독한 염세주의에 빠졌던 그에게는 모든 것이 만족스럽지 않았다.
부정의 인생은 카프카 문학의 원동력이었다. 인간과 삶에 대한 끝없는 절망을 그는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카프카는 한 메모에서 이렇게 밝힌다. ‘나는 나의 시대의 부정적인 면을 묵묵히 파내어 일구어왔다. 그러므로 나는 이 시대를 대표할 권리가 있다. 어떠한 종교도 나를 구원하지 못했다. 나는 종말이다. 또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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