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난민의 이미지는 단순하기 짝이 없다. 개발도상국에서 전쟁이나 부패 권력의 박해를 피해 뗏목을 타고 타국으로 탈출하면, 인권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타국 정부에서 난민을 구조하고 지켜 주는 그럴싸한 장면.
실상은 전혀 다르다. 한국이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한 지 20년이 지났지만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신청한 4516명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294명뿐이다. 난민이란 인종, 종교 또는 정치적 사상적 차이로 인한 박해를 피해 타국으로 탈출한 사람. 난민협약에 따른 일정한 요건을 갖춰야 법적 난민이 되어 일자리를 얻고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미국 국무장관을 지낸 헨리 키신저와 매들린 올브라이트,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 심리학자 프로이트도 한때 난민이었다.
‘한국에서 난민으로 살아가기’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콩고민주공화국 출신 난민 욤비 토나 씨(46)가 한국에 건너와 공장 노동자로 일하며 합법적인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 6년 동안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담았다.
토나 씨는 의사 아버지 아래서 유복하게 자랐다. 대학 가는 것이 특권인 나라에서 킨샤사 국립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콩고비밀정보국(ANR)에서 정보요원으로 일한 엘리트였다. 2002년 정보국 작전을 수행하던 중 조제프 카빌라 정권의 비리를 알게 되어, 이를 야당인 민주사회진보연합에 전달하려다 발각돼 체포됐다. 콩고민주공의 오랜 내전과 부패의 희생자가 된 것이다. 그는 옥고를 치르다 친구의 도움으로 간수를 매수해 감옥을 탈출했고, 위조여권을 들고 여장을 한 채 비행기를 타고 극적으로 고국을 떠났다. 목숨을 건 탈출 이야기는 스릴러 소설을 방불케 한다.
중국 베이징(北京)을 거쳐 배를 타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인천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그는 한국의 수도가 평양인 줄 알았을 정도로 한국에 대해 몰랐다. 낯선 땅에서 알음알음 알게 된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인쇄소, 농장, 직물공장 등에 불법 취업해 육체노동을 하고 고국의 가족에게 돈을 부쳤다. 공장에서 이름 대신 ‘깜둥이’나 ‘새끼’로 불리고 월급을 떼이고 기계에 팔이 끼여도 악덕 사장에게서 외면 받는 비참한 생활 속에서도 그의 꿈은 하나, 난민 지위를 받아 고국의 아내와 자식들을 한국에 데려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법적 난민이 되는 과정은 힘겨웠다. 난민 신청을 하고, 기약 없이 기다리고, 수차례 인터뷰하고, 불허 조치를 받아 이의신청을 하고도 또 불허 조치를 받고 결국 행정소송을 거쳐 승소하기까지…. 2008년 정식 난민이 된 그는 꿈에 그리던 가족을 데려와 현재 인천의 한 병원에서 일하며 강의와 인터넷 라디오 방송을 통해 난민 문제와 콩고민주공의 문제를 알리고 있다.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난민의 유입도 늘어나는 추세다. 이 책은 이방인 중의 이방인인 난민의 실상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다. 책 곳곳에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인권 수준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주요 20개국(G20)의 멤버이자 대중문화 한류로 한층 고무돼 있는 나라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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