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과학의 눈으로 보니 더 흥미진진한 명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5일 03시 00분


◇실험실의 명화/이소영 지음/284쪽·1만6800원·모요사

존 컨스터블의 1826년 작 ‘옥수수 밭’.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치는 구름 묘사에는 기후 변화에 민감한 영국인의 특성이 담겨 있다. 영국이 기상학의 산실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과학과 미술은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
존 컨스터블의 1826년 작 ‘옥수수 밭’. 살아 움직이는 듯 생동감 넘치는 구름 묘사에는 기후 변화에 민감한 영국인의 특성이 담겨 있다. 영국이 기상학의 산실이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과학과 미술은 시대와 사회를 반영한다.

영국 하면 떠오르는 게 뭘까. 요즘엔 박지성 선수가 뛰는 프리미어리그를 꼽는 이도 꽤 많겠다. 하지만 역시, 이 나라를 애기할 때 ‘신사의 나라’ ‘변덕스러운 날씨’는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다. 신사 얘기는 사람마다 찬반이 엇갈려도, 런던 시민조차 “Bloody weather(망할 놈의 날씨)!”를 입에 달고 사는 변화무쌍한 하늘은 누구라도 기억에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날씨가 현지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이 책은 19세기 초 기후가 과학과 미술에 드리운 파장에 주목했다. 영국에서 기상학이 태동하고, 자연을 면밀히 관찰해 화폭에 담는 낭만주의 풍경화가 성행한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그 가운데 당대에 활동한 ‘구름에 빠진 과학자’ 루크 하워드와 ‘구름 그림의 대가’ 존 컨스터블의 생애와 성과에 초점을 맞춰 직물 짜듯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실험실의 명화’는 이처럼 ‘멀어 보이지만 알고 보면 끈끈한 친척’인 과학과 미술의 접경에서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버무려 놓는다.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정보기술(IT) 전문잡지기자로 활동했던 저자에게 이런 주제는 맞춤옷처럼 편안해 보인다. 예를 들어, 명화 ‘비너스의 탄생’에 담긴 여신의 바다거품 탄생설화에서 생물의 진화에 대한 고대인의 혜안을 감지해낸다. 르네 마그리트의 ‘집합적 발명’을 보며 2004년 발굴된 ‘발이 달린 물고기’ 틱타알릭 화석 얘기를 풀어내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에세이처럼 사적 취향이 물씬하다가도 묵직한 미술과 과학 영역도 ‘스리슬쩍’ 넘나드는 공력이 만만치 않다.

의외로 이 책은 친절한 교양입문서와는 상당히 질감이 다르다. 솔직히 퇴근 후 소파에 누워 편안하게 책장을 펼쳤다가 여러 차례 당황했다. 실핏줄처럼 복잡 미묘한 내용들이 머릿속에 영 착상이 되질 않았다. 책의 부제가 ‘미술, 과학을 만나다’인데 가벼운 미팅인 줄 알고 나갔더니 준비도 없이 콘퍼런스나 학술대회에 참석한 기분이 들었다.

그만큼 꼼꼼한 취재를 바탕으로 했음이 분명한 정보량은 이 책의 큰 미덕이다. 여러 명의 대가가 그린 해부학 강의에 대한 그림들을 소개하면서 인체 회화론의 역사를 설명하거나 반대로 의학적 발전이 미술에 어떤 식으로 기여했는지 짚어보는 건 참으로 흥미롭다. 특히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뇌 해부도에 빗대어 설명한 미국 의학자의 주장은 진실 여부를 떠나 한참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펴게 했다.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가 1803년에 발표한 구름 삽화(왼쪽 사진)와 존 컨스터블의 회화 ‘오른편에 나무가 있는 구름 연구’(1821년). 모요사 제공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가 1803년에 발표한 구름 삽화(왼쪽 사진)와 존 컨스터블의 회화 ‘오른편에 나무가 있는 구름 연구’(1821년). 모요사 제공
하지만 이는 역설적이게도 이 책에서 가장 아쉬웠던 대목과도 직결된다. 과학과 미술 관련 자료가 풍부하나, 전달하려는 바가 헷갈릴 때가 잦았다. 단적인 사례가 명화의 X선 검사를 다룬 챕터다.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폴리베르제르의 술집’은 원근법 등이 맞지 않아 논란이 많았던 작품이다. 그런데 X선으로 촬영해 봤더니 마네가 의도한 실수였음을 일러준 건 좋다. 하지만 그게 미술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증이 풀리질 않는다. 반대로 X선이 회화의 비밀을 캐는 과학적 원리도 자세하지 않다. 미술이란 여성이 맞선에 나가 과학이란 남성을 만났다 치자. 소감을 물었더니 “괜찮긴 한데, 뭔가 얘기를 하다 말다 해”라고 삐죽거릴 것만 같다. 하긴, 그렇게 여지를 남겨야 보고 싶어질 수도 있겠다. 또 만날지는 알 수 없지만.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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