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한국 문화의 위상을 드높였던 지난해. 국내서도 한국 영화 관객이 처음 1억 명을 돌파했고, 혜민 스님의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은 150만 권이 넘게 팔렸다. 올해도 강호의 고수들이 문화계를 호령하기 위해 ‘칼’을 갈고 있다. 그들의 새해 출사표를 들어본다. 》 기자는 그에게 ‘괴물’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스물아홉에 쓴 생애 두 번째 희곡으로 국내 최고 권위의 동아연극상 대상과 희곡상을 거머쥐었다. 그것도 4시간 반이나 되는 대작으로.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또 다른 작품으로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동년배 극작가 중에 가장 묵직한 필력을 지녔을 뿐 아니라 소포모어 징크스(두 번째 작품이 데뷔작에 비해 부진한 경우)도 가볍게 떨쳐버린 그를 보면서 외모마저 닮은 프로야구 강속구 투수 류현진이 떠올랐다.
2008년 ‘원전유서’와 2009년 ‘방바닥 긁는 남자’를 발표한 극작가 김지훈(34)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류현진이 지난해 슬럼프에 빠져 10승 달성에 실패했듯 그 역시 지난해 1월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 ‘풍찬노숙’ 이후 두문불출 중이다. 원전유서 이후 3년 6개월간 6편을 무대화했던 극작가가 1년 넘게 신작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풍찬노숙 이후 제 연극에 대한 회의가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제가 그동안 믿었던 제 연극의 미덕이 대중에겐 결코 미덕으로만 비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제겐 스승이나 다름없는 이윤택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너무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는 말씀을 듣고 그 엄숙주의를 깨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지리멸렬하고 지지부진한 1년을 보냈습니다.”
그 1년간 그는 뮤지컬 대본도 쓰고 영화 시나리오도 쓰면서 보냈다고 했다. 이전부터 원전유서를 본 다른 장르 전문가들로부터 러브 콜이 쏟아졌지만 “오로지 연극 외길을 걷겠다”며 이를 외면해 왔던 그로선 큰 변화다.
“2009년 원전유서 재공연 때 삽입된 특별한 제조번호의 새우깡을 좋아하는 남자와 그걸 만드는 여자의 이야기를 독립된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는 분이 계셔서 뮤지컬 대본으로 완성했다가 너무 닭살이 돋아 제가 접었습니다. 시나리오는 남한에 있는 비밀 핵무기를 둘러싼 블록버스터 영화로 완성 단계에 있고 다른 영화들의 시나리오 대본 보완 작업에도 참여했습니다.”
이런 외도는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느끼는 대중적 글쓰기에 좀 더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희곡도 새롭게 준비 중이다. 9월 국립극단의 새로운 보금자리로 변신하게 될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재개관 개막작으로 준비 중인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가제)이란 작품이다. 1년 8개월 만의 신작 발표다.
“시대 미상의 과거, 아침밥 먹고 개국한 나라가 저녁밥 먹고 망하는 세상을 배경으로 새 왕조를 개국하러 도성으로 회군하는 개국군주가 이끄는 군대와 그 군대 내부의 권력다툼의 회오리에 휩쓸려 희생양이 되는 일자무식 화전민 여인들의 대결을 그린 작품입니다. 남자들로 이뤄진 군대는 끼니의 거룩함을 모른 채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좇는 수직적 존재를 상징하고 화전민 연인들은 끼니의 거룩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타인을 보살필 줄 아는 수평적 존재를 상징합니다.”
사실 이 작품은 원전유서를 쓰면서 풍찬노숙과 함께 일찍부터 구상된 작품이다. 풍찬노숙이 다문화가정 출신의 홍길동을 주인공으로 한 미래 배경의 새로운 건국신화 쓰기라면 ‘전쟁터를…’은 먼 과거를 배경으로 남성 중심 건국신화의 위선과 허상을 폭로하는 작품이다.
“‘전쟁터를…’은 기존 제 작품과 전혀 다를 겁니다. 전 원래 희곡을 써 가면서 이야기와 대사를 만들어 가는데 이번에는 시놉시스부터 완성했습니다. 관념성 강한 장대한 독백을 없애고 대신 배우들이 주고받는 쫄깃한 대사로 관객에게 좀 더 편하게 다가설 겁니다.”
이번 작품이 더 관심을 모으는 것은 지난해 동아연극상을 필두로 국내 연극상을 휩쓸다시피 한 김광보 씨가 연출을 맡았다는 점이다. 같은 연희단거리패 배우 출신으로 연출가로 일로매진해 온 김 씨와 희곡작가로서 독보적 세계를 구축해 온 김 작가가 어떤 궁합을 보여줄지 연극 팬들은 기대 만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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