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2003년 국내 최초의 말러 교향곡 전곡 연주로 주목받으며 교향악단 명가로 떠올랐던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 임헌정)가 새해 상반기 일정을 잡지 못했다. 3월 15일 이대욱 지휘 ‘불멸의 클래식’ 시리즈 연주회, 4월 12일 불가리아 지휘자 에밀 타바코프 지휘 콘서트 등 4월까지 경기 부천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예정된 4개 공연이 일정표에서 사라졌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부천시립예술단 측은 “부천시의회가 2013년도 예산 68억 원 중 6억 원을 삭감해 예정된 공연을 무대에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솔리스트 협연료, 객원지휘료, 객원연주료를 예산에 배정하지 않아 외부 지휘자, 외부 협연자는 물론이고 편성이 큰 작품에 외부 단원도 데려올 수 없게 되었다는 것.
부천필과 시의회의 긴장은 2011년부터 시작됐다. 시의회가 임헌정 예술감독을 행정감사에 불러 “소외계층을 위한 나눔예술 활동이 부족하다”고 잔소리를 하면서부터다. 지난해 11월 행정감사에서는 김관수 의원(민주통합당)이 임 감독에 대해 가족(부인)이 부천필 단원인 점을 들어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사직해야 한다”고 문병섭 문화예술과장에게 말하자 임 감독이 자신이 답변하게 해달라며 “상식적으로 일하세요”라고 말해 정회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사건 한 달여 뒤 확정된 예산에 이 같은 갈등이 반영됐다는 시각이다.
김 의원은 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예술감독이 객원지휘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으며 나눔예술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등 객관적 운영이 되지 않고 있다. 예술감독이 직접 지휘하면 객원지휘료 등을 아낄 수 있지 않은가”라며 “추경을 통한 예산 배정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감독은 “의회의 결정은 비상식적”이라며 악단이 객관적으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행정권을 쥔 총감독이 아닌 예술감독을 감사에 불러 행정적 문제를 추궁하는 것부터 맞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부천시립예술단 관계자는 “나눔예술 활동은 정상적으로 이뤄졌고 정기연주회 일정 등과 중복되는 부분만 대상 기관의 양해를 얻어 취소 또는 순연했다”고 말했다.
양측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가장 피해를 보는 이는 예술 혜택의 대상이어야 할 부천시민들과 부천필의 팬들이다. 최소한 연주활동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여건을 조성한 뒤에 인식차를 좁혀야 하지 않을까. 그것만이 2000년대 초 ‘국내 3대 교향악단’ 중 하나로 불렸던 부천필이 명성을 유지하고 부천시의 명성에도 계속 기여할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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