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성 전문기자의 &joy]오대산 월정사 전나무숲 ‘눈길卍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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꼿꼿하게, 새하얗게, 텅 비운 채… 나를 찾아 가는 길


월정사 전나무 숲의 삼보일배. 세 걸음 걸은 뒤 한 번씩 눈밭에 엎드려 절한다. 첫걸음에 탐욕을, 두 번째 걸음에 노여움을, 세 번째 걸음에 어리석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내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생명에게 큰절을 올린다. 발밑에선 땅속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겨울잠 자는 다람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바닥에 엎드리면 참 편안하다. 그렇다. 사노라면 한두 번쯤 누구나 땅바닥에 넘어지게 돼 있다. 산에 걸려 넘어지는가? 아니다. 늘 하찮은 것들에 걸려 넘어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걸려 코가 깨지고, 발목이 뒤틀린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 월정사=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월정사 전나무 숲의 삼보일배. 세 걸음 걸은 뒤 한 번씩 눈밭에 엎드려 절한다. 첫걸음에 탐욕을, 두 번째 걸음에 노여움을, 세 번째 걸음에 어리석음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내 자신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생명에게 큰절을 올린다. 발밑에선 땅속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 겨울잠 자는 다람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다. 바닥에 엎드리면 참 편안하다. 그렇다. 사노라면 한두 번쯤 누구나 땅바닥에 넘어지게 돼 있다. 산에 걸려 넘어지는가? 아니다. 늘 하찮은 것들에 걸려 넘어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걸려 코가 깨지고, 발목이 뒤틀린다. 결국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 월정사=박경모 전문기자 momo@donga.com

가끔 전생을 따라가고 싶었다 그 생각을 끌고
산속으로 들어서곤 했다 몇백 년을 산 나무
아래 요람에 누운 듯 잠들곤 했다 바람이
불었고 나뭇잎 같은 햇살의 무늬가 몸 위로
지나갔다

……

전생의 기억은 캄캄하다 전나무 숲으로
들어서는 밤 열한 시. 불쑥 내 손을 잡고
끌고 간 길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전생의
길이라는 듯 따뜻하다

전나무 숲을 지나온 별들이 내 몸의 혈마다
전나무 바늘잎을 꽂는다 산죽 이파리에 매달린
이슬방울이 별처럼 생명한다

<허림 ‘월정사 전나무 숲에서’ 부분>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에 눈이 내렸다. 쭉쭉 뻗은 전나무 머리에 희끗희끗 눈이 쌓였다. 전나무 몸은 탄탄하다. 아름드리 몸통에 군살이 하나도 없다. 용비늘 살갗이 얼어 터져도 떠억 버티고 서 있다.

전나무 숲은 일주문에서부터 금강교까지 1km 남짓 거리. 1000여 그루의 전나무가 우렁우렁 헌걸차다. 머리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백 살 안팎의 장년들이다. 꼿꼿하다. 부러지더라도 결코 구부러지지 않는다. 바람이 가끔 “쏴아∼” 하고 숲을 흔든다. 나무냄새가 향긋하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속세의 때를 씻고 부처님 땅에 들어간다. 욕망과 집착의 비린내를 벗겨낸다.

사람들이 텅 빈 눈밭을 걷는다. 세 걸음 걸은 뒤 한 번씩 눈밭에 엎드려 절을 한다. 삼보일배(三步一拜). 스님의 목탁소리가 청아하다. “따악 딱딱! 따그르르∼.” 첫걸음에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둘째 걸음에 부처님 말씀에 귀의한다. 셋째 걸음엔 스님들에게 귀의한다. 아니다. 1보에 탐욕을, 2보에 노여움을, 3보에 어리석음을 내려놓는다. 이것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을 비운다. 나도 잊고, 부처님도 잊고, 부처님 말씀도 송두리째 지워버린다.

주위는 온통 쩡쩡 얼어붙었다. 산도 잔뜩 웅크린 채 돌아앉았다. 바람은 쇳소리를 내며 운다. 오대천 계곡물은 꽁꽁 입을 닫아버린 지 오래다. 새들조차 둥지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오로지 사진작가들만 부지런히 셔터를 눌러댄다. 과연 무엇이 카메라 앵글에 잡혔을까. 전나무의 곧은 마음까지 오롯이 찍혔을까. 눈밭에 엎드려 절하는 불자의 ‘텅 빈 충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까.

전나무숲길에는 육백 살 최고령 전나무 고목등걸이 누워 있다. 2006년 10월 23일 밤 큰바람에 홀연히 쓰러졌다. 마른 나무 뼈에 눈꽃이 피었다. 검버섯 사이사이로 하얀 꽃이 우우 돋았다. 가운데 속이 텅 빈 채 넉장거리로 누워 있는 나무미라. 그 나무는 600년 동안 속을 비우면서 그렇게 살았나보다. 사람들이 저마다 그 통 속에 들어가 사진을 찍는다. 부질없어라! 한 세상 산다는 것. 사람 일생 고작 길어야 100여 년. 그런데도 모두들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아등바등 채우고 또 채운다.

눈길 만행(卍行). 전나무 숲길은 나무늘보처럼 느릿느릿 걸어야 제맛이다. 키다리 전나무 아저씨들은 병풍으로 둘러서 칼바람을 막아준다. 마음을 모두 내려놓고 어슬렁어슬렁 한가롭게 걸어야 편안하다. 한 호흡에 한 걸음씩, 천천히 발을 떼야 한다. 숨을 들이마시면서 발을 뒤꿈치부터 천천히 들어올려 앞쪽으로 옮기고, 숨을 내쉬면서 발을 역시 뒤꿈치부터 천천히 땅에 내려놓는다. 그냥 무심하게, 가는 듯 마는 듯 거북이처럼 걷는다. 한겨울 눈부신 보름밤, 구름에 달 가듯이 왔다갔다 걷노라면, 머릿속이 박하처럼 맑아진다.

별들이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북두칠성 자루 도는 소리도 걸린다. 동쪽하늘 늑대별(시리우스)의 꺼엉! 껑! 우는 소리가 애처롭다. 겨울산 신음 소리가 가슴 시리다. 겨울 새벽 강물처럼 은하수가 푸른 기운으로 흘러간다.

‘보아라 사람의 뒷모습/신이 있다면/이 세상에서/저것이 신의 모습인가/나무 한 그루에도/저렇게 앞과 뒤 있다/반드시 햇빛 때문이 아니라/반드시 남쪽과 북쪽 때문이 아니라/그 앞모습으로 나무를 만나고/그 뒷모습으로 헤어져/나무 한 그루 그리워하노라면/말 한마디 못하는 나무일지라도/사랑한다는 말 들으면/바람에 잎새 더 흔들어대고/내년의 잎새/더욱 눈부시게 푸르러라’

(고은 ‘나무의 앞’에서)

○ 월정사, 탄신 100년 다양한 행사


선지자 탄허 “만저우-랴오둥 일부 우리나라 편입될 것”

2013년은 탄허(呑虛·1913∼1983) 스님 탄생 100년 되는 해. 2월 24일(음력 1월 15일)이 바로 그날이다. 탄허 스님은 불교뿐만 아니라 유학, 역학, 노장철학 등 유불선에 두루 눈 밝았다. 평생 불교경전 연구와 번역에 매달렸다. 1975년에 간행된 신화엄경합론이 좋은 예다. 원고지 6만2500장 분량으로, 번역을 시작한 지 18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불가에서 ‘원효·의상대사 이래 최대의 불사’로 평가받았다.

일반인들에게 탄허 스님은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로서 더욱 친숙하다. 스님은 동양의 역학원리로 앞날을 훤히 내다봤다. 6·25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고 오대산 상원사에서 경남 양산 통도사로 거처를 옮겼다. 1968년 울진 무장공비 침투 한 달 전엔, 번역 중이던 화엄경 원고를 월정사 암자에서 삼척 영은사로 옮겼다. 나중에 월정사로 돌아와 보니 암자 주변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오대산으로 도주한 공비를 소탕하느라 수많은 참호를 판 것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연꽃촛불 명상의 시간.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연꽃촛불 명상의 시간.

2006년 태풍에 쓰러진 수령 600년 전나무 고목 등걸.
2006년 태풍에 쓰러진 수령 600년 전나무 고목 등걸.
우리나라의 운명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오래지 않아 위대한 인물이 나와서 남북통일을 이룩하고, 평화국가를 건설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새로운 문화가 전 세계의 귀감이 될뿐더러, 전 세계로 전파된다고도 했다. 생전 탄허 스님의 예언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세계 인구의 60∼70%가 소멸되고 바다가 솟아나 육지의 면적이 지금의 3배로 늘어날 것이다. 지진에 의한 핵폭발로, 핵 보유국들은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본다. 둘째, 일본 영토의 3분의 2가 침몰하고, 우리나라는 동남해안 쪽 100여 리 땅이 피해를 볼 것이다. 하지만 서해안 쪽으로 약 2배 이상의 땅이 융기해 영토는 오히려 늘어난다. 셋째, 중-러 전쟁과 중국 본토의 균열로 만저우(滿洲)와 랴오둥(遼東) 일부가 우리나라로 편입된다. 작은 섬나라로 졸아든 일본은 우리나라 영향권 내에 들어온다. 한미관계는 더욱 밀접해진다.

월정사는 탄허 스님 탄생 100년을 맞아 올 한 해 다양한 사업을 펼친다. 추모 다례재, 학술심포지엄, 화엄강좌 개설, 유묵특별전, 불교방송 육성법문 방영 등이다. 5월엔(3∼7일) 틱낫한 스님 초청 명상학교도 운영한다.
○ 템플스테이 이끄는 혜행 스님

“넘어져도 살 만한 세상, 겁내지 맙시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에게 고민이 있어도 부모에게 맡겨버리고 피해버립니다. 자꾸 도망갑니다. 모두 어른들 잘못입니다. 어릴 때부터 넘어지면 자꾸 일으켜 줬기 때문이지요.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도록 내버려뒀어야 했는데….”

월정사 혜행(慧行·사진) 스님은 몸은 산중에 있어도 저잣거리 중생들의 고통을 훤히 꿰뚫고 있다. 지치고 상처 입은 영혼들이 끊임없이 찾아와 그에게 아픔을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도 늘 가슴이 아프다. 도대체 다들 잘살게 됐다는데, 왜 마음의 고통은 더욱 심해지는가. 템플스테이 참가자는 불교 신자가 아닌 사람이 훨씬 많다.

“50대는 직장 은퇴 후에 오는 상실감을 호소하는 분이 많고, 30, 40대는 직장에서 죽어라 성공가도를 위해 달려가다가 어느 날 문득 ‘과연 이것이 행복인가’ 하는 회의감에 찾아오는 분이 많습니다. 주부들은 박탈감을 호소합니다. 아이들 다 키우고 보니 남편은 바깥으로만 따로 돈다는 것이지요.”

물론 스님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해결방법은 자신이 스스로 깨닫는 수밖에. 스님은 그저 들어주고, 조언해 줄 뿐이다. 가령 20대에게는 ‘이 세상은 넘어져도 살 만하다, 그러니 겁낼 필요 없다’고 말해준다. ‘절벽 둥지의 새끼 독수리가 첫 날갯짓을 할 때도 목숨 걸고 한다. 어미 독수리는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자신의 인생을 부모에게 의지하지 말고 똑바로 바라보라고 조언한다.

“50, 60대는 살아남는 법만 가르치려고 합니다. 평생 가난 극복이 그들의 삶이었으니까요. 20, 30대는 삶의 가치로 세상을 보려 합니다. 생존문제는 이미 해결됐으니 그들에겐 필요 없는 것이지요.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면 됩니다. 갈등이 생길 하등 이유가 없습니다.”
○ 월정사 템플스테이는…


템플스테이는 전국 109개 절집에서 1년 내내 이뤄진다. 월정사도 마찬가지. 발우공양, 스님과 차 마시며 대화하기, 참선, 예불 드리기, 108배, 108염주 꿰기, 울력, 오대암자 순례, 전나무 숲길 걷기 명상 등이 그 주요 내용이다. 머리를 깎고(남자) 30일 동안 수행하는 단기 출가학교도 있다. 초심자들은 대부분 2박 3일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새벽, 저녁 예불과 공양 외에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 휴식형도 호응이 높다(033-339-6606, 7).

한편 월정사는 2013 평창겨울스페셜올림픽(1월 29일∼2월 5일) 호스트타운이기도 하다. 헝가리 선수단 46명이 3박 4일 동안(1월 26∼29일) 월정사에 묵으며 한국 절집의 다양한 체험을 하게 된다. 스페셜 올림픽은 지적발달장애인들의 국제 체육잔치.
Travel Info


[교통]
승용차로는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진부 톨게이트에서 빠져 월정사로 가면 된다. 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가려면 동서울터미널(지하철 2호선 강변역)에서 진부행 버스를 탄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진부에선 월정사까지 가는 버스가 오전 6시 30분∼오후 7시 40분 하루 12회 있다. 이 중 상원사까지 가는 버스는 오전 8시 30분∼오후 4시 40분 6회. 월정사까지 25분 걸린다. 월정사∼상원사 거리는 9km.

[먹을거리]
산채정식, 산채비빔밥, 황태해장국이 대부분이다. 식당마다 맛과 가격이 비슷하다. △보배식당(033-332-6656), 오대산비로봉식당(033-332-6597), 동대산식당(033-332-6910), 경남식당(033-332-6587), 민속식당(033-333-4497), 산수명산(033-333-3103), 오대산통일식당(033-333-8855), 유정식당(033-332-6818), 만우농박(033-332-6818), 산들산채식당(033-333-7198), 오대산가마솥식당(033-333-5355), 오대산산채일번가(033-333-4604), 우리식당(033-334-6655, 토종닭 송어회)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월정사#탬플스테이#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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