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당할 수도 있다. 성인 여성이 아이로 변한다거나, 고양이와 대화도 나눈다. 남성은 쥐로 변하기도 한다. 물론 공상과학이나 판타지 소설은 아니다. 연애성장소설로 정의될 수 있는 이 작품은 이렇게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기묘한 사랑 얘기를 만들어낸다. 논리적일 필요는 없다. 차분하고 몽환적인 분위기, 그 매력적인 유혹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 자꾸 책장을 넘기게 되는 끌림의 힘도 여기에서 나오니까.
여기 서른셋의 여배우 ‘나’가 있다. 아역부터 시작했지만 뜨지 못한, 서른이 넘은 나이에 TV 단막극의 주연 자리를 겨우 맡은 사람. 그는 늦은 밤 놀이터에서 맥주를 마시다 만난 고양이에 이끌려 거대한 쥐 떼를 만나고, 깨어나자 일곱 살 아이로 변한다. 지갑도, 휴대전화도 없이 세상에 버려진 것. 아이가 된 ‘나’는 ‘달’을 만나 의지한다. 달은 자신이 출연한 단막극의 작가. 달은 서른셋의 ‘나’에게 호감을 표시했었다. 하지만 그는 ‘나’가 아이가 된 줄 모른다. 둘은 함께 살며 의지하기 시작한다.
중간부터 본격 연애소설의 공식을 충실히 따른다. 나가 점차 달의 진심을 깨닫고, 달이 나의 정체를 짐작하게 되면서 서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때 삼각관계가 펼쳐진다. 달의 애인이었던 서른셋의 고등학교 교사 ‘수지’가 다시 달 앞에 나타난 것. 달은 두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고, 나는 달이 떠날까 봐 불안해진다.
이야기의 흐름만 보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삼각관계를 다룬 소설이 어디 한둘인가. 하지만 작가는 비현실적 상황을 들여와 보다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하는 영민함을 발휘한다. 달이 아이의 내면에 있는 진실한 나의 모습을 보려 한다든가, 나가 달이 쥐로 변할 것을 알면서도 깊이 사랑하는 식이다. 사랑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봐야 한다는 메시지일까. 하지만 불안전한 존재인 나와 달의 사랑은 이뤄지기 힘들다. 그렇기에 더 애잔하다.
현실과 비현실이 교차하는 소설이기에 개연성에 대한 양보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작가가 설정한 가상적 전제가 와 닿지 않는 부분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나가 아이가 되는 과정을 작가는 ‘달의 마음속에 들어갔다 나와서’라고 간접적으로 밝히지만 독자는 ‘그냥 고양이를 따라갔더니’라고 읽을 소지가 크다. 고양이와 회색쥐, 흰쥐들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존재들임에도 어떤 개성이나 성격을 부여하지 않은 것도 아쉽다. 보다 동화적이고, 상상력 넘치는 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매력적인 소설임은 자명하다. 무엇보다 비슷비슷한 연애소설에 질렸던 독자들에게 강추! 2004년 장편소설 ‘피터팬 죽이기’로 제28회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고, 2008년 소설집 ‘파란나비 효과 하루’를 펴낸 작가는 세 번째 책에서 개성을 십분 발휘했다. 그의 과감한 도전을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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