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세트 불태우며 초심 떠올립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7일 03시 00분


창단 10돌 연작 페스티벌 여는 극단 ‘골목길’ 박근형 대표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처음엔 이름조차 없는 극단이었다. 76극단에서 잔뼈가 굵은 극작가이자 연출가 박근형 씨를 중심으로 일군의 배우들이 연극을 올리려 모이고 흩어지고를 반복했다. 정부의 문화예술 지원금을 신청할 때는 다른 극단 이름을 빌렸다. ‘청춘예찬’이나 ‘삽 아니면 도끼’ 같은 창작극들이 그렇게 무대화됐다. 하지만 매번 다른 극단 이름을 빌릴 순 없다는 생각에 극단 이름을 짓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03년이었다.

“제가 평생 골목길에서 살아서 그런지 골목길 풍경을 좋아했어요. 학교 다닐 때도 매번 같은 길로 다니지 않고 골목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녔어요. 또 저희가 하는 연극이 뭐 그리 거창한 것이라 생각되지도 않았어요. 골목길에 앉아있으면 저절로 눈에 들어오고 귀에 들려오는 사람 사는 풍경을 보여주자, 뭐 그런 마음이었죠.”

지금은 대학로 연극의 터줏대감이 된 극단 골목길의 골목대장 박근형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50·사진)는 예의 담담한 목소리로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탄생한 골목길은 ‘대대손손’, ‘경숙이, 경숙 아버지’, ‘너무 놀라지 마라’ 등의 화제작을 양산하고 국내 연극상을 휩쓸며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극단으로 성장했다. 골목길을 거쳐 간 윤제문 박해일 고수희 황영희 엄효섭 천정하 김영민 김영필 주인영 같은 배우들은 연극계는 물론이고 영화와 방송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그래서 골목길은 극단 차이무와 더불어 연극계 스타의 산실로 불린다. 비결이 뭘까.

“우선 작품이 많아요. 제가 외부에서 위탁받아 하는 작품까지 합치면 한 해 예닐곱 편이 넘습니다. 작품 수가 많다 보니 연습 기간이 한 달 정도로 상대적으로 짧죠. 게다가 전 연극을 올리기 직전에 가서야 대본을 완성하기 때문에 배우들의 순발력을 많이 요구합니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나 영화 촬영 현장에서 쪽 대본 받고 연기할 때도 적응을 잘하는 거 아닐까요.(웃음) 또 제가 대본을 써가는 과정에서도 배우들에게 이것저것 요구를 많이 해요. 골목길 배우들은 속으로 ‘그럼 내가 작가 하지 배우 하겠느냐’는 말들 많이 할걸요.(웃음)”

창단 10주년을 맞은 골목길은 요즘 조촐한 잔치를 열고 있다. 2월 말로 문을 닫는 대학로 소극장 76스튜디오에서 ‘난로가 있는 골목길’이라는 연작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76스튜디오는 골목길의 모태였던 76극단의 기획자 허성수 씨가 운영하던 76석 규모의 소극장이다. 골목길은 이 무대 가운데에 실제 난로와 연통을 설치하고 매일 공연할 때마다 목조로 만든 무대세트를 땔감 삼아 난로를 피우며 초기작과 최신작 세 편을 연달아 올리고 있다. 지금은 바빠진 선배와 유망한 후배 배우들이 번갈아 가며 무대에 선다.

“저희가 처음 공연할 때 100석 미만 소극장에서 많이 했는데 그때 추위도 쫓을 겸 실제 난로를 많이 피웠어요. 그때를 잊지 말자는 의미도 있고 저희 극단을 사랑해 주신 분들과 가족적 분위기에서 창단 10주년의 기쁨을 나누자는 뜻에서 준비해 봤습니다. 목조무대 하나를 앞뒤로 돌려가며 세트로 쓰고 있는데 페스티벌이 끝날 땐 일체를 연기와 재로 날려 보내려 합니다.”

겉으론 인의와 도덕을 강조하지만 뒤에선 인육을 식량으로 삼는 일가족을 통해 인간성의 위선을 그린 초기작 ‘쥐’에 이어 현재는 시인 이상의 내면세계를 2인극으로 풀어낸 최신작 ‘하늘은 위에 둥둥 태양을 들고’(20일까지)가 공연 중이다. 골목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청춘예찬’(24일∼2월 10일)이 대미를 장식한다. ‘청춘예찬’의 공연은 2008년 이후 5년 만이다. 1만∼3만 원. 02-6012-284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박근형#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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