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6일. 기자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최호림 서강대 동아연구소 교수(48)의 다급한 SOS가 올라왔다. 자기 자신에게 선물할 디지털카메라(디카)를 추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DSLR나 미러리스를 추천해 주세요. 그냥 인터넷으로 주문해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다음 주에 베트남에 가야 해서 조금 급한데, 잘 부탁합니다.”
짧은 글 속에서 많은 정보를 엿볼 수 있었다. ‘올해 40대 후반인 인류학자 최 교수가 그간 일명 ‘똑딱이’ 카메라를 사용해 왔지만 최근 5년간 대유행한 디지털 일안반사식(DSLR) 카메라는 사용한 경험이 없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전자제품을 사는 것은 두렵다’ 등이다. 실제 가격검색을 통해 들쭉날쭉한 카메라 가격을 접한 상당수 기성세대는 ‘화들짝’ 놀라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가족용이 아닌 현장 연구용 카메라를 찾고 있다.
다른 주제라면 몰라도 ‘디카 추천’에는 기자도 빠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지난 10여 년간 디카를 항상 휴대하고 다닐 정도로 수많은 브랜드와 기종을 두루 경험해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는 남에게 쉽사리 추천하기 쉽지 않다. 광학기기와 전자제품의 특성을 두루 갖춘 카메라란 상품은 개인의 취향과 미적 감수성, 그리고 생활습관에 따라 수천수만 가지의 조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은 질문자의 내공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추천하는 게 최선이지만, 어느새 페이스북 친구(페친)들의 추천 모델명이 실시간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저는 얼마 전에 소니 NEX7을 샀는데 너무 만족해서 잘 쓰고 있습니다.”(동료 Kang)
“교수님, 과감하게 최상위 기종인 풀 프레임 캐논 6D를 선택하시는 건 어떠세요?”(제자 Boo)
“요즘에는 후지 X시리즈도 인기더라고요.”(동료 Joo)
아뿔싸. 한발 늦었다. 온라인에서 접한 지인의 도움 요청은 가능하면 바로 응해 주는 것이 미덕이다. 기자도 일단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추천 제품부터 꺼내 봤다.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 인류학자인 카메라 주인의 활용과 편의 측면을 두루 고려한 선택이었다.
“올림푸스 OM-D라는 제품이 어떨까요. 카메라다운 생김새와 촬영 느낌이 기대 이상입니다. 아, 그리고 인터넷으로 주문하셔도 무방합니다.”
DSLR인가 미러리스인가?
순식간에 다양한 제품을 추천받은 최 교수는 그다지 밝은 기색이 아니었다. 검색을 해 봤는지 “다들 예산 범위를 넘어선다”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곤 ‘미러리스’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DSLR에 기본 줌(17-55)을 사용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DSLR는 장점이 매우 많지만 무거워서 매번 계륵같이 느껴집니다. DSLR에서 반사경을 뺀 게 미러리스니까 더 작고 가볍습니다.”(동료 Lee)
이때쯤 연구 동료인 Joo의 페친인 김선아 씨(40)가 나섰다. 그녀는 사진기자 출신의 현직 작가다.
“선생님, 머리로 고민하지 마시고 직접 사용해 보세요. 친한 분 걸 빌려서 최소한 하루 이상 화장실-식당 불문하고 메고 다녀 보시고 감당할 자신이 있으면 DSLR이고, 버겁다 싶으면 미러리스입니다.”
다음 날 이 조언을 실천해 본 최 교수는 “DSLR에 자신이 없어졌다”라고 답했다. 한 고비는 넘긴 셈이다.
이 밖에도 수없이 많은 기종과 제품뿐만 아니라 카메라 선택 방법론이 댓글을 통해 오가기 시작했다. 1월 7일 최 교수는 다양한 후배의 조언을 정리해 다음과 같은 중간 결론을 내렸다.
①현재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라.
②사진 촬영의 목적과 활용 영역이 뚜렷하지 않다면 일단 휴대성과 순발력이 중요하다.
③지르려면 제대로 지르되, 자신이 없다면 저렴하게 경험해 보는 게 낫다.
④그래도 현재 필요에 비추어 하이브리드 혹은 미러리스로…. 여기에 이의가 있으신가요?
줌렌즈인가 단렌즈인가?
상황이 이쯤 되자 ‘도대체 어떤 용도로 카메라를 쓸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질문이 쏟아졌다. 최 교수는 정색을 하고 이렇게 답했다.
“저는 문화인류학자입니다. 주로 해외 현지 조사를 다니면서 인터뷰를 하고 행사에 참여합니다. 가끔 마을과 주변 경치도 찍지만 사람이나 그들의 활동을 주로 많이 찍습니다. 촬영 장소는 식당, 의례-축제, 학술 발표, 가옥, 집안 모임 등이고 실내, 실외는 반반입니다. 저녁이나 야간에도 가끔 일이 있습니다. 큰 행사의 경우 20∼70m 정도 거리에 있는 피사체를 찍어야 할 때도 있고요.”
페친들은 순식간에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 비싸지도 않으면서 낮과 밤, 실내와 실외 촬영이 가능하고, 활동성과 편의성까지 겸비한 제품을 골라야 했다. 일단 초미의 관심사는 단렌즈(줌이 되지 않는 단초점 렌즈)인가 줌렌즈인가였다.
기자는 17mm 내외의 단렌즈가 최선이란 의견을 개진했다.
“문화인류학자는 상대방에게 부담감을 안 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줌렌즈는 들고 다니기도 힘들고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기 때문에 부적합하지 않을까요?”
양쪽 모두를 가져야 한다는 동료 Moon 교수의 절충안도 있었다.
“전 지금 오래된 DSLR에 35mm 단렌즈 하나 들고 다녀요. 일단 무게를 많이 줄이고 화질을 확보하긴 했는데, 줌이 아쉬울 때가 많긴 해요. 일반 렌즈는 맘에 안 들고 고성능 줌렌즈는 너무 비싸서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이에 최 교수는 “초보자가 쓰려면 단렌즈가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거운 렌즈를 사용하면 결국은 불편해질 수 있을 듯하다”라는 생각을 밝혔다. 단렌즈로 결론이 나려는 순간 재반론이 들어왔다.
“선생님의 촬영 환경은 광각과 망원을 아우르는 모든 상황이 포함돼 있어요. 또한 현지인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담는 것이기 때문에 모델을 세우듯 이리 와라, 저리 가라 할 수도 없고요. 그러니 단렌즈는 답이 아닌 셈입니다. 어두운 실내를 고려해 20-50mm 줌렌즈와 16mm 단렌즈(f2.0) 로 구성된 더블 렌즈 세트가 어떨까요?”
꼭 체크해 봐야 할 사항 ‘중고시장’ 시세
하지만 렌즈 교환의 필요성 여부에 대해 최 교수가 의문을 제기했다.
“동남아시아 현장은 바람도 많고 먼지도 많습니다. 렌즈 교환을 하다가 CCD에 먼지가 들어가는 상황이 좀 우려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2차 후보에 오른 제품이 소니 NEX-5R나 6, 삼성 NX-1000의 18-55mm 줌렌즈 구성이었다. 의외로 두 제품 모두 갖고 있는 내장 와이파이(Wi-Fi) 기능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올림푸스와 파나소닉 제품이 후보에 오르긴 했지만 여러 조건에서 최 교수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그것은 바로 활성화된 중고시장의 존재 여부였다. 인기가 높은 제품은 팔기도 쉽고 중고 물품도 자주 시장에 나온다. 최 교수는 이왕이면 항상 새 제품이 쏟아지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중고시장에서 구입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다.
최 교수는 결국 하루 종일 중고장터에서 ‘매복’한 끝에 국산 제품을 최종 선택했다. 원래 일본 브랜드보다 저렴한 제품을 중고시장에서 좀 더 싸게 구입한 것이다. 검소한 인문학 연구자에게는 예산이 최고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1월 10일 최 교수는 다음과 같은 감사 인사를 페친들에게 전했다.
“일단 미러리스 NX-1000, 18-55mm로 최종 결정했어요. 완벽한 기계치인 제게 친절하게 많은 정보를 주신 페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생면부지인 저에게 너무나 많은 유익한 가르침과 함께 가격 대비 가장 좋고 적합한 카메라 구입 방법까지 상세히 안내하신 멘토분들께도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사진으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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