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깍듯한 학동, 존경받는 훈장? 서당을 둘러싼 세 가지 오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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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의 사회사/정순우 지음/508쪽·2만5000원·태학사

태학사 제공
태학사 제공
훈장이 세수하러 나간 사이 서당의 학동들은 몰래 먹을 갈아 문고리에 칠해 놓는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와 수건에 손을 닦던 훈장은 깜짝 놀란다. “엥, 이 어쩐 일이냐?” “아, 저 먹물로 무슨 세수허셨는 거라오?” “에, 이놈.” “아, 이런 문고리에 뭔 먹이 묻었습니다.” “어허! 에이, 죽일 놈들 같으니. 너희 놈들이 그런 거 아니냐?”

전북 정읍시 산외면에서 입으로 전해 오는 이야기다. 우리가 ‘서당’ 하면 떠올리는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머리를 길게 땋아 내린 코흘리개들이 훈장에게 따끔한 회초리를 맞아가며 천자문을 외우다가도 때로는 익살을 부리는 모습 말이다. 실상 서당이란 오늘날 그런 이미지로만 박제되어 있다. 서당은 여말선초에 싹튼 이래 구한말 근대교육시설이 들어서기까지 조선의 기초교육을 담당한 사설교육기관이다.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적인 낡은 교육기관으로 폄훼되어 서당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쓴 이 책은 서당을 통해 조선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교육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학술서다. 저자는 일반적 편견과 달리 “서당은 조선사회의 흐름에 조응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고, 폐쇄적 신분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다. 18세기 후반부터 서당 내부에 나타난 변화는 근대교육으로 이행하기 직전의 과도기적 현상으로, 근대적 변화가 향촌 내부에서 착실히 진행됐다는 것이 핵심 논지다. 학술서임에도 흥미롭게 술술 읽힌다. 특히 서당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편견을 깨뜨리는 연구 결과가 눈에 띈다.

오해 하나. 서당은 근대사회로의 이행을 막는 교육 시스템이었을까? 구한말에 이르면 서당이 산간벽지에까지 퍼져 조선의 교육 시스템은 전국망을 갖추게 된다. 사족 계층뿐 아니라 다수의 평민, 심지어 천민 자제들에게도 교육의 기회가 제공된 것은 평등을 향한 근대적 현상이었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양인 층을 중심으로 한 소농민들이 교육의 주체로 등장했고, 노비가 운영하는 서당이 생길 정도였다.

오해 둘. 훈장은 사회와 학생들로부터 깍듯하게 존경받았을까? 18세기 전까지는 향촌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서당을 설립해 운영했기 때문에 사회적 대우가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17세기 말부터 몰락한 지식인들이 늘고 이들이 훈장으로 밥벌이를 하자 훈장은 그저 허약한 직업인으로 여겨졌다. 무식한 훈장을 희화화하는 구비설화와 민요도 많다. 훈장은 사족과 비슷한 지식을 가졌음에도 사회에서 천시 받는 데 불만을 가져 사회 불만세력과 힘을 합하기도 했다. 일부 훈장이 역모에 개입하자 영조는 서당이 유언비어의 발원지라며 강하게 불신했다.

오해 셋. 서당에선 천자문 같은 초보적 지식만 가르쳤을까? 서당은 그 설립 주체나 마을의 상황에 따라 초급의 문자 교육에서부터 심오한 성리철학 강론까지 다양한 분야를 가르쳤다. 마흔 살 전후의 성인까지 가르치는 서당도 있었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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