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어떻게 이동하는가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김원호 옮김/215쪽·1만5000원·청림출판
지난해 동북아를 강타한 한국의 ‘안철수 현상’이나 일본의 ‘하시모토 도루 현상’엔 공통된 요소가 많다. 전통적인 양대 정당정치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반감 그리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젊은 세대의 열망의 산물이란 점이다. 이를 미국에서 벌어졌던 무당파 랠프 레이더 열풍과 엮어서 ‘제3의 정치물결’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제3의 물결’로 유명한 미래학자와 그의 부인이 20년 전 함께 쓴 이 책이 뒤늦게 번역된 것도 이를 겨냥한 게 아닐까. 그 핵심 주장을 미국이 현재 겪는 위기가 제2의 물결(산업화) 세력과 제3의 물결(정보화) 세력 간의 정치투쟁에서 제2의 물결 세력의 저항으로 초래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2의 물결 엘리트들은 제2의 물결 원리들을 바탕으로 부와 권력을 축적해왔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과거의 방식을 유지하려 한다. 새로운 방식으로의 변화로 인해 자신들이 갖고 있는 부와 권력이 도전받을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다수의 중간층과 하층 사람들 역시 제3의 물결로의 전환을 두려워한다.”
토플러의 ‘제3의 물결’과 ‘파워 시프트’를 결합해 ‘제3의 물결 정치학’을 전개한 이 책의 주장을 한국의 현실에 옮겨보자. 산업화 세력(새누리당)과 민주화 세력(민주당)이란 제2의 물결 정치엘리트들이 제3의 물결 정치엘리트(안철수)의 세력화를 막는다,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원서가 발표된 시점이 1994년임을 곱씹어 보자. 이 책의 주장은 20년이 다 된 지금도 미완 투성이다. 토플러는 제1의 물결(농업혁명)이 수천 년, 제2의 물결이 300년에 걸쳐 이뤄졌다면 제3의 물결은 수십 년 안에 완결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하지만 1955년부터 시작됐다는 ‘제3의 물결’은 60년이 넘었지만 정치권력 장악은 물론이고 실업문제 해결에도 실패했다. 이 책에서 ‘제3의 물결 정치학’에 근접했다고 평가한 민주당의 앨 고어와 공화당의 뉴트 깅리치는 구시대 정치인이 됐다. 심지어 이 책을 출간한 진보자유재단조차 2010년 이후 활동을 멈춘 상태다. 미래학이 정치를 운위하기 전에 먼저 고전적 정치의 책임윤리부터 배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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