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개천서 용 나던 사회… 서얼-평민도 대거 과거 급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3일 03시 00분


한영우 교수가 5년간 방대한 사료에 묻혀 분석한 결과를 ‘과거, 출세의 사다리’(지식산업사)에 담아냈다. 동아일보DB
한영우 교수가 5년간 방대한 사료에 묻혀 분석한 결과를 ‘과거, 출세의 사다리’(지식산업사)에 담아냈다. 동아일보DB
“조선은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였다. 500년간 유지된 과거제도는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공부만 열심히 하면 정승과 판서에 오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오늘날 한국의 강한 교육열이라는 문화적 유전인자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과거제도라 할 수 있다.”

조선사 연구의 권위자인 한영우 이화여대 이화학술원 석좌교수 겸 서울대 명예교수(75)가 양반뿐 아니라 평민과 서얼 등 신분이 낮은 사람들도 대거 과거에 합격했음을 증명하는 연구서 ‘과거, 출세의 사다리’(지식산업사)를 출간했다. 조선이 신분 이동에 폐쇄적이고 경직된 사회였다는 학계의 기존 통념을 뒤집는 주장이다.

한 교수는 조선시대 500년간 배출된 문과 급제자 1만4615명의 신원을 ‘방목(榜目·과거 합격자 명단)’ ‘족보’ ‘실록’ 등을 통해 꼼꼼히 조사해 이들이 벼슬아치의 후예인지, 미천(微賤)한 집안 출신인지 밝혀냈다. 5년간의 자료 조사와 집필 끝에 200자 원고지 1만2000장이 쌓였다.

한 교수는 1392년 조선 건국 때부터 과거시험이 폐지된 1894년 갑오개혁에 이르기까지 전체 급제자에서 신분이 낮은 급제자가 차지하는 비율을 왕대별로 소개했다. 여기서 신분이 낮은 급제자란 ‘방목’에 본관이 기록되지 않은 급제자, 족보가 없는 급제자, 족보에 본인이나 아버지 이름만 보이고 그 윗대의 가계가 단절된 급제자, 시조가 된 급제자, 향리·서얼 출신 급제자 등이다.

조선 전기 태조∼선조 대에 선발된 문과 급제자는 모두 4527명. 이 가운데 신분이 낮은 급제자는 1100명으로 전체 급제자의 24.3%를 차지한다. 신분이 낮은 1100명 중 3품 이상 고관에 오른 급제자는 306명에 이른다. 한 교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과거시험을 통한 신분 이동이 역동성을 지녔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은 태조∼정종 대에 40.4%, 태종 대에 50%였다가 광해군 대에 이르면 14.6%로 낮아지고 다시 점차 증가해 고종 대에 이르면 58%대에 이르는 U자형 추이를 보인다. 조선 중기인 17세기를 전후로 신분이 낮은 급제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데 대해 한 교수는 “문벌가문이 득세하면서 신분이 낮은 급제자들을 억제했던 시대 분위기와 관계있다”고 분석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한국인이 자신을 ‘양반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데 대해 한 교수는 “500년 동안 벼슬아치가 나오지 않은 성관(姓貫·성씨와 본관)이 거의 없기 때문”이라며 “일단 벼슬아치가 나온 집안에서는 후대에 실각하더라도 자손들이 ‘주관적으로’ 양반을 자처했다”고 설명했다.

전 4권 중 태조∼선조 대를 다룬 제1권이 먼저 출간됐다. 앞으로 출간될 제2권에서 광해군∼영조 대, 제3권에서 정조∼철종 대, 제4권에서 고종 대를 다룬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
#조선#과거 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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