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창구 앞에서 나의 경제적 가치를 대출 가능액으로 환산하는 순간… ‘멘붕(멘털 붕괴)’이다.”
“강의 없는 방학 때 아내가 마이너스통장에서 용돈을 꺼내 줄 때 약간 미친다.”
인문학 연구자들이 털어놓은 현실적 고충들이다.
문학 연구자들의 모임인 상허학회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30∼50대 국문학 전공 연구자 20명(남녀 각 10명)을 대상으로 주관식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 대부분은 대학 강사이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섞여 있다. 질문은 5가지.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언제 슬럼프에 빠지고 어떻게 극복하는가’ ‘연구자일 뿐만 아니라 생활인으로서 어떤 고충을 느끼는가’ ‘내가 학술대회를 기획한다면…’ ‘선후배 연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들은 생활인으로서의 고충으로 주로 경제적 문제를 꼽았다. 40대 기혼 남성 연구자는 “교환가치가 없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데서 비롯한 경제적 곤란, 안정적이지 못한 직장으로 인한 실직의 불안”이라고 대답했다. 30대 비혼 남성 연구자는 “아버지가 식사 중에 이가 빠지셨는데 아버지의 이 하나도 해줄 수 없는 나의 현실이 원통했다”고 털어놓았다. 30대 비혼 여성 연구자는 “애초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한 인문학을 선택하여 무전유죄를 실천하고 있는 스스로를 위로할 밖에요”라고 답했다.
고달픈 현실에도 이들이 연구의 끈을 놓지 않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40대 기혼 남성 연구자는 “문학이 인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생각”이라며 “나를 나태에 물들거나 세속적 관행에 빠지지 않게 하는 것이 문학연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50대 기혼 여성 연구자는 “현대문학 작품을 통해 삶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답했다.
상허학회는 소설가 상허(尙虛) 이태준(1904∼?)의 문학 세계를 조명하기 위해 1992년 결성됐다. 설문조사 결과는 상허학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최근 펴낸 ‘쉬플레망 상허 2012 ver. 1.0’(케포이북스)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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