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중 무인도에 고립된 국군과 인민군. 창작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한정석 작·박소영 연출)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나 ‘지중해’가 떠오르는, 익숙한 설정에서 출발하지만 가상의 존재인 여신(女神)을 불러내 극의 밀도를 끌어당긴다. 시대적 배경이 같은 뮤지컬 ‘프라미스’가 장중하면서 애잔했다면, 이 작품은 아기자기하고 따뜻하다.
국군 대위 한영범(최호중)과 부하 신석구(최성원)는 인민군 장교인 이창섭(임철수)과 병사 류순호(신성민), 변주화(주민진), 조동현(지혜근)을 포로수용소로 이송하려고 배에 오른다. 기상 악화로 배가 고장 나고 여섯 군인은 무인도에 조난하는데 유일하게 배를 수리할 수 있는 순호는 전투후유증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한 상태.
단절된 공간에서 이념적 대립으로 충돌하는 전반부는 다소 늘어진다. 극이 객석을 단숨에 장악하는 순간은 뮤지컬 제목과 동명의 넘버(노래) ‘여신님이 보고 계셔’가 등장하는 지점이다. 상황이 역전돼 인민군의 포로가 된 영범이 순호를 달래려고 상상 속의 여신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준다. “꿈이 아파 잠들지 못하는 밤/ 작은 숨소리마저 아려와/ 그림자 뒤로 숨고만 싶은 밤 … 미움도 분노도 괴로움도/ 그녀 숨결에 녹아서 사라질 거야 … 언제나 우리를 비추는/ 눈부신 그녀만 믿으면 돼/ 여신님이 보고 계셔.”
이어 6명의 남자가 귀여운 율동을 곁들여 선사하는 ‘그대가 보시기에’에서 객석의 반응이 가장 뜨겁다. 단순한 동작은 따라해 보고 싶고, 발랄하고 경쾌한 멜로디와 서정적인 가사는 극이 끝난 뒤에도 귓가를 맴돈다.
각자에게 여신 같은 존재를 풀어놓는 대목은 나열식이라 산만하고, 마지막의 여신(이지숙)과 순호의 대화가 작위적이지만 이 뮤지컬은 장점이 더 많다. 각 인물의 생생한 캐릭터와 귀에 감기는 음악(이선영 작곡)이 극을 끌고 간다. 강약 조절을 영리하게 보여준 임철수, 최호중과 최성원의 척척 맞는 호흡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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