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운동의 어머니 아웅산 수치 평전
피터 폽햄 지음·심승우 옮김/744쪽·2만5000원·왕의서재
미얀마(버마) 민주화운동의 지도자이자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여사(68)가 평창 겨울 스페셜올림픽 개막식 참석차 29일 3박 4일 일정으로 처음 한국에 온다. 마침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평전이 국내에 출간됐다.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의 기자인 저자는 수차례 미얀마를 현지 취재하고 수치 여사를 두 차례 만난 경험을 바탕으로 평전을 썼다. 저자가 후기에서 밝혔듯이 수치 여사는 집필에 협조해 달라는 저자의 부탁을 거절했다. 월터 아이작슨의 전기 ‘스티브 잡스’와 달리 주인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공식 인터뷰를 하지 못한 것은 이 책의 약점이다. 하지만 저자는 수치 여사의 가족과 지인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방대한 자료를 모아 그 약점을 보완했다.
이 가냘픈 여인은 애초부터 미얀마 민중을 이끌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 그는 버마의 독립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로 태어나 두 살 때 아버지를 암살로 잃었다. 영국인 학자와 결혼해 두 아들을 낳고 7년간 영국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던 그는 운명처럼 인생의 대전환을 맞는다. 1988년 어머니의 병환 소식을 듣고 미얀마로 왔을 때 고국에선 오랜 군부독재에 맞서 민주화항쟁이 한창이었다. 수치 여사가 결성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은 1990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군부는 정권을 이양하지 않고 수치 여사를 가택연금했다. 그는 수차례에 걸쳐 총 15년간 가택연금을 당했고 2010년 가택연금이 풀린 뒤 국회의원에 당선돼 미얀마의 민주화를 이끌고 있다.
책에는 수치 여사의 인생에서 떼놓을 수 없는 배경인 미얀마 군부독재의 만행과 민주화운동 과정이 세세하게 묘사돼 있다. 이 낯선 나라의 현대사가 단숨에 읽히는 이유는 그 모습이 한국의 암울했던 독재시절, 그리고 시민의 힘으로 이뤄낸 민주화와 너무도 비슷하게 겹쳐지기 때문이다.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아내이자 어머니로서의 삶을 가슴에 묻은 사연도 절절하다. 영국에 머물던 남편과 자녀들은 미얀마 군부가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아 수치 여사를 만나러 올 수 없었다. 암으로 죽은 남편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심정이 오죽했을까. 저자는 “수치 여사는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조국을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이 수치와 버마 국민의 깨질 수 없는 연대를 만들었다”고 썼다.
고립무원에 식료품을 살 돈마저 부족했던 이 외로운 여인은 집 안에서 어떻게 긴긴 날을 보냈을까. 책에는 그가 불교식 수행 습관에서 한발 나아가 명상을 시작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며 마음을 다스렸고 “명상에서 오는 기쁨을 알게 된다면 당신도 확실히 명상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리라”라고 밝혔다. 그 밖에 더 자세한 개인사는 취재하지 못했으니, 훗날 수치 여사가 자서전을 통해 밝히길 기대할 수밖에 없다.
책의 띠지에는 ‘아웅산 수치 최초의 전기’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수치 여사를 다룬 여러 전기가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으로 이미 나와 있으니 이는 사실이 아니다. 출판사 측은 ‘한국어로 번역된’ 최초의 수치 여사 전기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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