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 세계 23개국, 131개 화랑이 참여한 국제 아트페어가 24∼27일 마리나베이샌즈에서 열렸다. ‘We're Asia(우리는 아시아다)’란 슬로건 아래 펼쳐진 올해 행사는 인도네시아 작가를 필두로 동남아 지역 미술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획들이 눈길을 끌었다. 싱가포르=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서울과 비슷한 면적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 달러를 넘는다. 해안선을 따라 고층빌딩이 즐비하지만 몇 걸음만 내디디면
차이나타운과 아랍스트리트 등 각 문화권의 음식과 전통을 즐길 수 있는 골목들이 반겨준다. 중국 말레이시아 인도 등 다문화,
다민족이 공존하는 이곳은 바로 싱가포르다. ‘경제우등생’으로 알려진 이 나라는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문화우등생’을 목표로
질주하고 있다. 22∼27일 다양한 미술행사를 한데 모은 ‘싱가포르 아트 위크’도 그런 노력 중 하나다, 21세기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예술허브’를 꿈꾸는 도시국가의 문화현장을 소개한다. 》
따스한 햇살과 초록빛 수목이 어우러진 1월의 싱가포르. 도심 곳곳에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를 알리는 깃발들이 나부낀다. 24∼27일 마리나베이샌즈 엑스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아트 스테이지’는 미술품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국제아트페어이다. 이를 포함해 지난 한 주 동안 싱가포르에선 미술관 전시부터 공원을 거닐며 감상하는 조각전까지 50여 개 행사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다. 미술애호가든 아니든 각자 구미에 맞게 골라볼 수 있도록 도시 전체가 예술축제의 현장으로 변신한 것이다.
○ 아시아의 정체성을 앞세우다
싱가포르미술관의 기획전에 선보인 이수경 씨의 작품.‘We're Asia(우리는 아시아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국제아트페어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24∼27일)의 슬로건이다. 이 문구처럼 금년 행사는 동남아시아와 호주까지 아우르는 범(汎)아시아권에 확실한 방점을 찍었다. 23개국, 131개 갤러리에서 작가 600여 명의 작품을 선보였는데 이 중 75%는 아태지역 화랑들이다. 아트 스테이지 창립자이자 디렉터인 로렌조 루돌프 씨는 “아시아에도 아트페어는 많지만 대부분 자국 미술에 집중한다. 아트 스테이지의 경우 그런 지역적 한계에서 벗어나 아시아 전역의 현대미술을 고르게 조망할 수 있는 기회란 점에서 신규 화랑과 컬렉터들의 호응이 크다”고 말했다.
한국서도 국제 현대 가나 아라리오 이화익 박영덕 313 대구의 누보, 우손 갤러리 등이 참가했는데 판매에 있어선 명암이 엇갈렸다. 서구 화랑으로는 런던의 화이트 큐브, 베를린의 마이클 슐츠, 파리의 에마뉘엘 페로탱 등이 부스를 차렸다. 이들 부스와 별도로 국제 미술시장에서 중국 인도에 이어 새롭게 떠오른 동남아 미술을 조명한 코너가 주목을 끌었다. ‘인도네시아 파빌리온’의 경우 작가 36명이 대형 설치작품과 회화 등을 선보였다. 일부 작품을 갤러리가 아닌 아트페어 측이 판매한다는 점에서 논란을 빚었으나 접하기 힘든 동남아 미술을 대대적으로 소개한 점에선 호평을 받았다. 이 밖에 싱가포르 큐레이터가 지역 작가들을 소개하는 ‘싱가포르 플랫폼’, 한 갤러리에서 한국 태국 중국 호주 등의 신예작가를 1명씩 소개하는 ‘프로젝트 스테이지’도 돋보였다.
아트 스테이지는 3년차 신생 아트페어임에도 경험 많은 디렉터가 운영을 맡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주었다. 전시장을 둘러본 서진수 강남대 교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페어인 ‘아트 바젤’ 측이 홍콩의 아트페어를 인수한 뒤 홍콩 시장 진입이 힘들어졌다. 서구 유명 갤러리들에 밀려난 아시아 화랑들이 싱가포르로 눈을 돌리는 추세”라며 “한국화랑협회가 주관하는 키아프도 미술시장의 변화에 발 빠른 변신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열린 축제를 지향하다
보태닉 가든에서 열린 자도크 벤다비드의 야외조각전. 싱가포르=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굳이 아트페어가 아니라도 볼만한 전시가 많았다. 싱가포르미술관에서는 자국의 신진작가를 조명하는 기획전, 리움미술관을 비롯해 국제적인 컬렉터 작품으로 구성한 전시를 마련했다. 아시아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는 컬렉터 전의 경우 이수경 씨의 ‘번역된 도자기’ 등으로 깊이 있는 전시를 선보였다.
미술관을 벗어난 공간에서도 미술을 접할 수 있었다. 호텔 방에서 미술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호텔아트페어가 콘래드센테니얼 호텔서 열렸고 부둣가 운송회사 창고에서 경매가 이뤄졌다. 보태닉 가든에서는 자연을 주제로 한 자도크 벤다비드의 조각전이 열려 일반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 “아트페어 성공 비결은 절대 모방하지 않는것” ▼ 운영 총괄 로렌조 루돌프 디렉터
“아트 페어의 성공비결? 그런 건 없다. 다만 현대미술의 예술적 측면과 미술 시장의 상황, 사회의 변화나 사람들의 욕구를 읽으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명심할 것은 남을 모방하지 말라는 것이다. 각국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어디든 고유한 특성을 살리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다.”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의 창립과 운영을 맡은 로렌조 루돌프 디렉터(54·사진)는 아트 페어 분야의 노련한 전문가로 꼽힌다. 그는 스위스 출신으로 10년간 ‘아트 바젤’ 디렉터를 지내면서 야외에 대형 설치작품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현대미술의 흐름을 살펴보는 기능을 아트 페어에 부여한 것이다. 2008년 중국 상하이의 ‘SH컨템퍼러리’도 그의 ‘작품’이다. 아트 페어 전문가인 그가 싱가포르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21세기는 동남아가 세계미술의 허브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 중심에 자리한 싱가포르는 중립적 위치에서 아태지역 작가들을 세계에 알리는 플랫폼 겸 창구 역할을 할 수 있다.”
육중한 몸매로 쉴 틈 없이 현장을 돌고 사람들과 대화하던 그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아트 페어는 패키지다. 컬렉터들이 미술품을 사고 싶은 기분이 들 수 있게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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