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8일 맑음. 인터넷 라디오×비틀스. 트랙 #42 Dirty Projectors ‘About to Die’(2012년)
어릴 땐 음악을 잘 몰랐다. 아직도 그렇다. 근데 꼬마 땐 좀 알았던 것 같다. 형이 학교에 간 사이 그의 방에 들어가 그가 아끼는 기타를 몰래 꺼내서 잡고 아무렇게나 퉁겨대면서 아무 멜로디나 지어서 막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건 가히 프리 재즈(free jazz·기존의 화성 박자 체계를 무너뜨리고 자유 즉흥을 표방한 재즈)에 가까웠을 거다. 자유롭던 대가(大家)는 음악의 선악과를 따먹은 뒤, 뭘 좀 안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음악 낙원의 동쪽으로 쫓겨났다.
어제 저녁 서울 서교동의 작은 공연장에서 미국의 인디 록 밴드 더티 프로젝터스의 콘서트를 봤다. 귀기(鬼氣) 어린 라이브였다. 무대에 올라선 20, 30대 젊은이 6명은 각각 드럼, 베이스, 신시사이저, 기타, 전자 퍼커션 앞에 서 복잡다단한 화성과 박자 체계 안을 유영했다.
그들의 음악 역시 장르를 규정짓기 힘든 무규칙이종이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민속 음악부터 매스 록(math rock·복잡한 수학적 박자 체계를 지향하는 록), 고풍스러운 버블검 팝과 현대적인 리듬앤드블루스(R&B), 힙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를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나든다. 데이비드 번과 토킹 헤즈, 비외르크, 비치 보이스, 배틀스, 딜린저 이스케이프 플랜, 리얼 그룹…. 머릿속에서 장르의 벽은 무너졌고 수많은 뮤지션이 스쳐갔다. 영화 ‘제5원소’의 릴루(밀라 요보비치)가 단 시간에 지구의 대중음악 역사를 ‘스캔’한 뒤 자기 나름대로 재창조해낸 듯 결합은 화학적이었고 신선했으며 낯설게, 익숙하게 들렸다.
특히 여성 멤버 3명이 악기 연주와 동시에 괴이한 보컬 화성을 비인간적으로 정확히 구현해내는 데는 거의 아연했다. 디지털 퍼커션과 피치 벤더(pitch bender·연주된 음정을 순간적으로 올리거나 내리는 장치)까지 정교하게 활용하는 이들의 초인적 연주는 아이돌 ‘칼군무’의 청각적 버전 같았다. 객석의 환성은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들어 좋다”가 아니라 “내가 이런 노래를 들을 줄 몰랐다. 고맙다”로 번역됐다. 함께 본 작곡가 J는 문을 나서며 “오랜만에 충격을 받았고 자괴감까지 느낀다”고 했다.
그들을 팟캐스트와 인터넷 라디오 시대의 비틀스라 불러도 될까. 잡식이 만들어낸 괴물. 그래.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의 별처럼 많은 음악을 접할 수 있는 시대잖아. 이런 세상에서 대동소이한 음악만 만들고 들어왔던 게 더 이상한 일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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