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로 시작하는 신경림 시인(77)의 시 ‘가난한 사랑 노래’. 요즘도 널리 애송되는 이 시가 담긴 시집 ‘가난한 사랑 노래’가 출간 25주년을 맞았다. 실천문학사는 이를 기념해 이 시집의 특별 한정판(2000부)을 이달 말 펴낸다. 반가운 마음에 시인에게 약속을 청했다. “에이 뭐 쓸 얘기가 있겠어?”라는 퉁명스러운 답변. 신년 인사를 겸해 “차나 한잔하시죠”라고 다시 청해 29일 서울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1955년 등단한 시인은 1975년 자유실천문인협회를 결성하고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장 및 이사장,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등을 지내며 사회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시단의 원로. 지난 대선에서는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의 멘토단에 참여했다. 시집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대선과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자격 논란으로 흘렀다.
―‘가난한 사랑 노래’는 언제 쓰셨나요.
“1987년 내가 (서울 성북구) 길음동 살 때였어. 시내에서 (술을) 덜 먹고 들어가면 한 번씩 들르는 술집이 있었지. 그 집 딸이 남자친구라며 내게 데려왔는데 ‘지명수배가 돼서 결혼을 못 한다’고 하더군. 그래서 술김에 ‘결혼해라, 내가 주례 서 줄게’ 하고 축시 써주고, 주례 섰지. 작은 개척교회에서 했는데 하객이 10여 명밖에 안됐어.”
―결혼식 축시였군요.
“아냐. 내가 써준 것은 ‘너희 사랑’이라는 시였어. 한 편 더 쓴 게 ‘가난한 사랑 노래’지. 실천문학사에 가져갔더니 ‘가난한 사랑 노래’가 더 좋다고 해 시집의 표제시가 됐어. 하지만 난 아직도 ‘너희 사랑’에 더 애착이 가.”
―그 부부하고 지금도 연락을 하시나요.
“가끔 해. 그 사람(남편)이 결국 감옥 다녀왔고, 지금은 인천에서 조그만 가게를 해.”
―1980년대엔 시 쓰기 힘드셨죠.
“‘가난한 사랑 노래’에 ‘기계 굴러가는 소리’란 대목이 있어. 사실 이게 원래는 ‘탱크 굴러가는 소리’였지. 하지만 출판사에서 수정하는 게 좋겠다고 해서 고쳤지.”
“진짜 옛날 얘기들이네”라고 말한 시인은 회상에 젖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금방 민주주의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1980년대와 비교하면 많이 진화했고, 당시와 지금이 똑같다고 말하면 ‘사기꾼’이라고도 했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통령이 되면 ‘박통시대’로 회귀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런 일은 없지. 어떻게 옛날로 돌아가. 박근혜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박근혜도 바보가 아니고 우리도 바보가 아니야.”
―김용준 총리 후보자의 각종 의혹이 요즘 논란입니다.
“보수층에 깨끗한 사람이 잘 없는 거야. 1970, 80년대 조금이라도 벼슬을 했으면 때가 묻은 거야. 지저분하게 부동산 투자하고, 자식들 군대 안 보낸 건데, 우리는 그럴 재주도 없어. 투기를 해놓고도 나쁘게 생각 안 하고 (후보자로)나온 게 문제야. 박근혜가 실패한다면 인사문제로 실패할 것 같아.”
―대선 재검표 얘기도 이어지는데요.
“뭐 근거도 없잖아. 몽니 부리는 거지. 이런 것을 보면 민주(통합)당이라는 게 집권할 능력이 없는 것 같은 느낌도 줘. ‘문재인, 민주당이 됐어도 큰일이었다’ 그런 생각도 들지.”
하지만 시인은 선을 그었다. “다시 (지지)한다고 해도 문재인을 하겠지만,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는 얘기야”라고 말한 그는 이 말은 꼭 써달라고 했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박근혜 당선의 일등공신’이라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것은 민주당이 패배 책임을 이정희에게 뒤집어씌우는 거야. 이정희는 자기 지지자들을 위한 역할을 충분히 했을 뿐이야.”
대선 후 전국을 돌며 ‘힐링 토크’ 콘서트를 열고 있는 소설가 황석영 얘기를 꺼내자 시인은 짧게 말했다. “얘기하지 맙시다. 원래 설치는 사람이니까.”
대선의 여파는 문단에도 이어지고 있다. 문인 137명이 지난해 12월 14일 한 일간지에 선언문 광고를 실었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돼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선거법 위반한 것이 잘했다는 것은 아니야. 다만 작가들의 정서, 양심에 비춰서 원만히 해결됐으면 좋겠어. 당국이 관용을 가지고 볼 필요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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