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맛]남미의 중후한 香 ‘카시 시엘로’에 혼을 뺏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일 03시 00분


이석구 스타벅스커피코리아 대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셨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이석구 대표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직원들과 함께 마시는 커피”라고 말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제공
“가장 맛있는 커피를 마셨을 때를 떠올려보세요.”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이석구 대표는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직원들과 함께 마시는 커피”라고 말했다.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제공
2007년 12월 스타벅스커피코리아 대표가 된 이래로 나는 ‘가장 맛있는 커피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대표 취임 후 적어도 하루에 커피 3잔씩은 마셨으니, 어림잡아도 5000잔은 마신 셈이다. 하지만 ‘가장 맛있는 커피’를 고르기란 쉽지 않다. 커피 맛을 평가하는 데는 너무나도 많은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같은 에스프레소 머신, 같은 원두를 이용해 만든 아메리카노라도 언제, 누구와, 어디서, 어떤 컵에 마시는지에 따라 커피 맛은 천차만별이다. 곁들여 먹는 음식에 따라서도 커피 맛은 달라진다. 커피는 80개국에서 재배되는데 ‘아라비카’나 ‘로부스타’ 등 커피나무 품종에 따라 커피 맛이 다르다. 같은 품종이라도 그해 기후와 일조량에 큰 영향을 받고, 열매에서 생두를 얻는 가공방식과 블렌딩의 차이, 로스팅 방법 차이 등도 영향을 미친다. 커피 추출 후에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우유를 섞거나 크림을 얹는 등 수만 가지 변형이 가능하다. 게다가 커피는 미각뿐 아니라 후각, 따뜻한 머그잔을 감싸는 촉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다. 커피 맛을 표현하는 방법도 ‘깔끔하다, 기름지다, 톡 쏜다, 강렬하다, 텁텁하다, 밍밍하다, 흙냄새가 난다’ 등으로 수십 가지의 수식어가 가능하다.

가장 맛있는 커피를 떠올리는 과정은 이렇게 험난하므로, 결국 ‘가장 맛있는 커피’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마시는 커피’일지도 모른다. 내게 가장 강렬한 여운을 남긴 커피는 ‘과테말라 카시 시엘로’다. 대표이사로 취임한 직후였던 2008년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당시만 해도 원두는 미국 로스팅 공장에서 중국 상하이 물류센터를 거쳐 한국으로 들여오는 ‘간접 배송’ 형태였다. 배송기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원두의 신선도가 떨어졌다. 나는 미국 스타벅스 본사를 설득해 결국 미국 시애틀에서 한국으로 원두를 직접 배송하기로 했다. 이 과정을 통해 첫 번째로 들여온 원두 중 하나가 바로 과테말라 카시 시엘로다.

과테말라 안티과 계곡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품질의 커피가 생산되는 곳이다. 세 개의 화산지대에 둘러싸여 해발 고도 1500m가 넘는 이곳에서 카시 시엘로가 재배된다. 말로만 들으면 화산재의 텁텁함이 연상되지만 사실 이 커피는 레몬의 청량감과 코코아의 중후함이 기막히게 조화를 이룬 맛이다.

카시 시엘로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직접 배송된 첫날, 임직원들과 나눠 마신 커피의 향을 나는 잊을 수 없다. 그 커피 안에는 소비자들에게 더욱 신선하고 맛있는 커피를 제공하고 싶다는 스타벅스 임직원의 열망과 노력이 녹아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그 커피에서는 더욱 신선하고 상쾌한 맛이 났다.

카시 시엘로를 마시면 서울 인사동의 단골 한정식집이 떠오른다. 그곳의 음식은 기교를 부리지도, 지나치게 대중성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그저 정갈함과 담백함만으로 승부한다. 모든 재료를 전국 주요 산지에서 직접 배송해 언제나 신선하고 정직하다. 나를 기억해주며 언제나 밝게 인사해주는 종업원들과 만나는 것은 또 하나의 행복이다.

‘카시 시엘로’는 스페인어로 ‘Almost Heaven’, 즉 ‘천국에 가까운’이란 뜻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마신 가장 맛난 커피는 열정으로 똘똘 뭉친 직원들, 함께 즐거움을 나누고 싶은 고객들과 함께 나눠 마신 것이다. 그것이 내게는 바로 천국이다.

이석구 스타벅스커피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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