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과속시대… 기다려야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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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의 배신/프랭크 파트노이 지음·강수희 옮김/344쪽·1만5000원·추수밭

2G, Wibro, 3G, Wifi, LTE…. 알파벳과 숫자의 알 수 없는 조화는 앞으로 또 어떤 생소한 속도의 용어를 만들어낼까. 기술과 사회는 ‘이유나 의미는 알 필요 없으니 더 빨라지라’고 강요한다. 패스트푸드와 스마트폰은 때론 우리 삶과 뇌로부터 진실을 분리시킨다.

이 책은 이러한 맹목적인 현대사회의 속도전에 반기를 든다. 순간적 직관에 몸을 맡기는 대신에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최대한 기다리라고 주장한다. 원제는 ‘기다림(Waiting)’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웰빙’이나 ‘힐링’을 위한 추상적 느림이 아니다. 철저히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느림의 가치를 역설한다. 중대한 의사결정에 있어 ‘어떻게’가 아니라 ‘언제’의 타이밍을 조언한다.

심리학, 행동경제학, 신경과학, 법, 금융, 역사에 걸친 방대한 자료 수집과 전문가 인터뷰가 ‘느림’이라는 추상적 가치를 내세우는 책의 ‘골다공증’을 막는다. 아우구스티누스부터 워런 버핏까지 고금을 막론한 ‘늦춤의 달인’도 소개한다.

책이 전하는 예시는 구체적이다. 야구에서 타자에게는 공의 속도와 궤적을 파악하고 방망이를 휘두르는 데 0.2초가 주어진다. 훌륭한 타자는 이 짧은 시간을 생리학적으로 최대한 늦추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다. ‘타이밍의 예술’인 코미디에서 코미디언들은 의도적인 멈춤을 통해 관중의 시간을 왜곡하고 긴장감을 최고조에 이르게 한 뒤 목적을 달성한다. 사과는 빨리 할수록 좋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 사과하는 시점을 가능한 한 늦추는 것이 관계회복에 더 좋다. 진화 과정에서 동물처럼 생물학적 반응이 즉시적이었던 인류는 도태됐고 반응을 늦춰 안정성을 유지한 인류는 살아남았다.

샌디에이고대 법학·경제학 교수인 저자는 전작 ‘대파국’ ‘전염성 탐욕’을 통해 기만적이고 탐욕적인 자본주의의 심장 월스트리트의 안팎을 날카롭게 파헤쳐왔다.

책은 종종 하나 마나 한 당연한 이야기로 빠지기도 한다. 시간을 두고 읽기 못마땅한 독자라면 책의 정수만 기억해도 좋다. ‘잘못된 결정을 내린 순간을 후회한 적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그 순간을 CCTV로 찍어 멀리서 바라보듯 숙고하라. 최고의 순간까지 기다려라.’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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