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은초는 바로크시대 명기를 복사한 크기별 리코더 4대를 비롯해 20여 대의 리코더를 번갈아가며 쓴다. 그는 “이탈리아 악기는 가벼우면서 강렬한 소리가, 프랑스 악기는 섬세하고 여성적인 소리가, 독일 악기는 솔직하고 두터운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초등학교 3학년 때였죠. 담임선생님께 리코더를 처음 배웠어요. 반 아이들 다 같이.”
장년층 이하 한국인, 아니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기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만의 남다른 이야기가 그날 시작되었다. “호흡과 입 모양에 따라 새로운 소리가 나오는 게 너무 신기했죠. 며칠 뒤 선생님 옆에서 가르치는 ‘조교’가 됐어요. 하하.”
그렇게 염은초(21·스위스 바젤 스콜라칸토룸 석사과정)는 리코더와 만났다. 지난해 3월 그는 독일 작센 국제 리코더 콩쿠르에서 심사위원 6명 만장일치로 우승했다. 심사위원장은 “반드시 무대에서 만나야 하는 ‘스테이지 몬스터’”라고 격찬했다. 한 심사위원은 “평이 필요 없는 연주”라며 심사평을 내지 않았다.
리코더는 ‘바로크 목관악기의 챔피언’으로 유럽인에게 가장 사랑받는 악기였다. 최근 바로크 르네상스 고(古)음악 부흥 열풍에 따라 다시 각광을 받고 있다. 14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라이징 스타 시리즈’ 일환으로 독주회를 갖는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5학년 때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합격했죠. 동급생 언니오빠들이 3, 4세 많았어요.” 중2 때는 일본 야마나시 고음악 콩쿠르 3위.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뉴질랜드 캔터베리대 예비학교 리코더 과정에 들어갔다. 2년 뒤 교수가 말했다. “가르칠 게 없다. 넌 유럽으로 가야 해.”
야마나시 콩쿠르 심사위원이었던 케스 뵈케가 취리히 음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그의 권유로 치른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2011년 고음악 연주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인 바젤 스콜라칸토룸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리코더과정 입학정원은 단 한 명. 19세. 석사과정 최연소 합격이었다. 지난해 작센 콩쿠르 우승으로 세계 고음악계가 주목하는 신예로 떠올랐다. 줄이고 줄인 그의 ‘라이프 스토리’다.
리코더의 어떤 점이 매력인지 물었다. “다양한 소리죠.” 의외의 대답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악기를 ‘목가적이지만 음역도, 연주법도 제한된’ 악기로 생각한다. “그것도 사실이에요. 하지만 귀엽고 소박한 소리부터 시크하고 세련된 소리까지 다 펼쳐 보일 수 있어요. 연주자가 원하는 대로 다 받아들이죠.”
그런 그의 생각은 그의 연주가 가진 매력이기도 하다. 16세기 르네상스시대 곡부터 현대 창작곡까지, 그의 연주는 작품에 적합한 소리를 화려하게 펼쳐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완벽한 호흡과 손가락의 테크닉이 뒷받침하는 그의 연주는 이 단순한 구조의 악기로부터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음색과 상상을 이끌어낸다.
리코더로 이미 수많은 고봉(高峰)을 정복한 그의 포부는 무엇일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어린 시절 열 시간이 훌쩍 넘는 그의 연습을 말없이 지켜보던 아버지의 당부이기도 하다.
그 밖의 계획? …스물한 살에 6월 석사과정까지 끝내는 그를 위해 학교는 바로크 앙상블 리딩(leading)과정을 열어주었다. 합주단을 이끄는 지휘자의 역할이다. 5년, 10년 뒤에는 리코더를 불면서 악단을 이끄는 ‘리더’ 염은초의 모습을 서울 무대에서 만날지 모른다.
14일 연주회에서 그는 바사노의 르네상스 곡, 텔레만의 바로크 레퍼토리부터 현대 창작곡까지 두루 선보인다. 지난해 쓴 자작곡 ‘비주얼 아트 10Y’도 무대에 올린다. “악기 부딪치는 소리, 악기를 조립하는 소리까지 리코더로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시각 효과와 함께 만날 수 있는 곡이에요. 재미있을 걸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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