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이 법인화되면서 첫 작품으로 ‘오이디푸스’를 올린 2011년 국내 연극계에선 오이디푸스 바람이 불었다. 2500년 전 소포클레스가 쓴 그리스 비극을 새롭게 극화한 작품이 네 편이나 무대화됐다.
올해는 그 오이디푸스의 딸인 안티고네의 바람이 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2년 전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를 무대화했던 연출가 한태숙 씨가 다시 국립극단과 손을 잡고 4월 15일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안티고네’를 무대화한다. 안티고네 역으로 중견배우 김호정, 크레온 역으로 원로배우 신구, 눈먼 예언가 테이레시아스 역으로 ‘오이디푸스’에서도 같은 배역을 맡았던 박정자 씨가 출연하기로 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오이디푸스’를 쓴 소포클레스 원작의 ‘안티고네’의 주인공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비극적 운명의 딸이다. 그는 오이디푸스가 죽은 뒤 테베의 왕위를 놓고 싸우다 한날한시에 죽은 쌍둥이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의 여동생이기도 하다. 쌍둥이의 죽음으로 이 남매의 삼촌 크레온이 왕위에 오른다. 크레온 왕은 에테오클레스를 국가의 영웅으로 성대한 장례를 치러 준 반면 외부 세력을 끌고 온 폴리네이케스는 ‘공공의 적’으로 규정해 매장을 금한다.
안티고네는 왕이자 삼촌이고 미래의 시아버지가 될 크레온의 명령은 ‘인간의 법’이지만 육친의 시신을 매장하는 것은 ‘신의 법’이라며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한다. 국가와 이성을 상징하는 크레온은 이를 용납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조카이자 며느릿감인 안티고네를 ‘살아 있지만 죽은 거나 마찬가지인 자’로 만들어 버린다.
그 안티고네 바람의 선봉장은 연극 ‘아일랜드’의 몫이다. 남아공을 대표하는 극작가 아톨 푸가드가 1974년 발표한 이 2인극은 남아공의 흑백 차별이 극심하던 시절 절해고도의 감옥에 수감된 두 흑인 죄수가 안티고네를 극화하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1977년 윤호진 연출, 이승호 서인석 주연으로 국내 처음으로 무대화돼 동아연극상 대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이후 거듭 무대화되면서 주연급 남자배우들의 산실로 불리게 됐다. 정치범으로 10년형을 선고받은 존(크레온 역)과 억울한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사는 윈스턴(안티고네 역)의 연기 호흡이 그만큼 중요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에서 존과 윈스턴 역을 맡은 최무인과 남동진은 연기 경력 10년 차 이상의 베테랑이라지만 낯익은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아드레날린 넘치는 강렬한 몸의 연기로 90분 간 관객의 시선을 휘어잡는다. 원작의 존은 지적이면서 노회한 반면 윈스턴은 감성적이고 변덕스럽다. 존 역의 최무인은 돌직구를 꽂아 넣는 강속구 투수처럼 이를 정공법으로 소화했고 윈스턴 역의 남동진은 그 돌직구를 민감한 변화구처럼 받아 내는 포수의 연기를 보여 줬다. 이는 섬세한 연기를 필요로 하는 극 초반에는 빛을 발하지 못했지만 막판에 두 사람이 각각 크레온과 안티고네로 분해 극중극을 펼칠 때 폭발적 위력을 발휘했다.
젊은 여성 연출가 서지혜는 수컷 향취가 가득한 이 두 배우를 모래와 빛으로 감싸 안았다. 때론 무대 바닥을 가득 채운 모래밭 위에 태양빛을 대신한 강렬한 조명을 쏘아 대며 그들의 아드레날린을 최대치로 치솟게 만들었다. 하지만 존의 감형 통보로 엇갈린 그들의 대조적 심리를 표현할 때는 돌과 같은 침묵을 지키는 두 배우의 몸 위로 차가운 달빛과 서정적 음악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간수와 동료 죄수들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복장으로 선 그들이 폭압적인 국가 권력으로서의 크레온과 그에 맞서 인간적 존엄의 마지막 보루를 지키려는 안티고네를 통해 자신들의 신념과 우정을 지켜 내는 순간 천장에서 쏟아지는 모래 폭포로 객석을 압도한다. : : i : :
2012년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연기상 공동 수상작. 17일까지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 3만원. 010-3142-2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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