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두 번째 시집 ‘그냥 덮어둘 일이지’를 펴낸 미당 서정주 선생의 동생 서정태 시인. 시와 제공
아흔 살 노(老) 시인이 아흔 편의 시를 묶어 한 권의 시집을 냈다. 생애 두 번째 시집인데 첫 시집 이후 무려 27년 만의 출간이다. ‘왜 이리 뜸했냐’고 물었더니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시가 항상 쓰이는 게 아니거든. 또 나도 놀러 다니고 사람도 만나고 술도 먹고 해야지. 허허.”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여덟 살 아래 동생인 우하 서정태 시인이 시집 ‘그냥 덮어둘 일이지’(시와)를 펴냈다. 1946년 민주일보로 시작해 전북일보에서만 30년을 일한 기자 출신인 그는 1986년 첫 시집 ‘천치의 노래’(동아출판사)를 펴내며 형을 따라 시인이 됐다.
“젊었을 때는 말이야, 친구가 많았어. 조병화니 구상이니 다 친구였지. 그런데 말이야, 그 친구들이 누구한테 나를 소개할라치면 꼭 ‘미당 아우 서정태’라고 말하더라고. 나도 독립된 사람인데 젊었을 적에는 그렇게 불리는 것에 불만도 많았지.”
한국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 미당 서정주. 평생을 따라다닌 형의 그늘은 짙고 넓었지만 이제 동생은 크게 괘념치 않는다고 했다. “읽는 사람이 미당 시도 읽고, 내 시도 읽는 거지. 나는 유명하지 않지만 일부라도 내 시를 읽고 좋아하면 나도 좋은 거고.”
전북 고창군 부안면에 있는 미당의 생가(우하의 생가도 이곳이다) 맞은편에 초가집을 짓고 살고 있는 시인은 “문만 열면 전부 산이고 들”이라고 말한다. 그런 까닭에 시집에는 자연을 노래한 시가 많이 눈에 띈다.
‘나비야/꽃향기에 머물지 말고/그 향에 취하여 바람 나부끼듯/훨훨 날아 먼 길 가자//개울물 소리 넘어/솔바람보다 앞서가는/봄빛 헤치며 가자//나비야/머문 흔적 없으면 어떻다냐/그냥 가자 산 넘어/훨훨 날아 먼 길 가자’(‘먼 길’ 전문)
발표된 시는 이미 내 것이 아니며 자신을 떠났다고 말하는 시인. 그래도 오랜만의 시집인데 좋은 평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을까. “시는 보는 사람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데, 내 것이 감동을 주는지 어떤지 난 몰라. 몇 사람이 써둔 거 보고 좋다고 말은 하더구먼….”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