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에는 치렁치렁한 긴 머리의 여인이 다소곳이 앉아 있다. 사실 이 여인은 남자다. 그것도 작가가 여성의 옷을 입고 분장한 뒤 피사체로 직접 나선 작품이다. 자세히 보면 작품마다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죄다 닮았다.
영국에 살면서 활동하는 배찬효 씨(38)의 사진작업이다. 그는 유학시절 동양인 남성을 바라보는 서구인의 시각에서 느꼈던 소외감과 불편함을 절대왕정시대의 귀부인과 동화 속 주인공 등 독특한 초상사진 시리즈로 비틀어 표현했다.
그림 속에 다양한 표정의 저승사자들로 등장한 화가 이정웅 씨.서울 강남구 신사동 스페이스K의 ‘SET UP’전은 배 씨와 함께, 작품 속으로 진출한 화가 이정웅 씨(31)를 조명한 2인전이다. 이 씨는 그림 속에서 저승사자로 분장해 작가의 얼굴을 드러낸다. 현대의 여성과 저승사자가 어우러진 회화에서는 꿈과 현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낯선 시공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근 미술계가 주목하는 두 작가는 ‘연극적 설정’을 기반으로 과거와 현재가 섞인 이미지를 각기 다른 어법으로 풀어내면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들 작품은 사진과 회화, 초상의 형식과 상황의 재현, 서양과 동양의 복식, 주인공과 보조인물 등으로 차별화되면서 비교 감상하는 재미를 준다. 3월 6일까지. 02-3496-7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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