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으로 얼룩진 1994년 조계종 사태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 멸빈(滅빈·무거운 죄를 저지른 승려를 승단에서 영원히 추방하는 것)됐던 의현 전 총무원장(77)이 최근 종단에 사면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19일 조계종에 따르면 의현 스님은 5일 사면을 위한 심판청구서를 종단의 헌법재판소에 해당하는 법규위원회에 제출했다. 그는 이 청구에서 “당사자가 출석하지 않은 가운데 징계가 이뤄져 재심 기회도 없었다”며 “절차상 하자가 명백한 만큼 재심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1994년 종단 사태는 의현 스님의 총무원장 3선을 둘러싼 갈등으로 촉발됐으며 4월 10일 승려대회, 11일 혜암 스님의 비상사태 선포에 이어 13일 의현 총무원장 사퇴로 일단락됐다. 이 과정에서 140여 명이 해종 행위자로 징계됐고 이 중 의현, 보일, 규필, 원두, 무성 스님 등 9명이 멸빈됐다.
의현 스님의 사면 신청과 관련해 종단 내부 분위기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현 종단은 반(反)의현 스님을 주장하며 개혁을 주도해 온 이른바 ‘개혁회의’ 그룹이 실세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의현 스님의 사면 청구는 종단 내부의 달라진 세력관계도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의현 스님은 종정 진제 스님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당시 대선후보가 진제 스님을 방문했을 때 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멸빈된 의현 스님이 참석해 “종정과 총무원장이 어떻게 멸빈자와 한자리에 있을 수 있느냐”는 비난이 일기도 했다. 의현 스님이 주지를 지낸 대구 동화사 문중도 그의 사면을 오랜 숙제로 여겨 왔다.
총무원의 한 관계자는 “의현 스님의 심판 청구는 27일 예정된 법규위원회가 다뤄야 할 사안인지조차 명확하지 않다”며 “멸빈자 사면 문제는 세세한 규정에 대한 갑론을박보다는 본인의 공개 참회와 공청회 등 폭넓은 여론수렴을 통한 공감대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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