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 보험사기에 물든 아이들의 참혹한 성장기… 한 가정의 붕괴과정 생생
가족의 상처마저 외면하는 인간의 극단적 이기심은 과연 누구탓일까?
그의 소설은 불편하다. 잔혹한 폭력이 책장 가득 흘러넘치며 순환 또는 확대된다. 거대한 폭력 앞에 놓인 사람들은 무기력하고 나약하다. 2005년 첫 장편 ‘악어떼가 나왔다’ 이후 최근 나온 다섯 번째 장편 ‘모르는 척’(문예중앙)까지. 문학동네작가상, 자음과모음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안보윤(32)은 우리 사회의 숨겨진 폭력성, 그 안에서 파괴되는 개인과 가정에 초점을 맞춘다.
25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그를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행사 때문에 경호 인력이 새까맣게 거리를 뒤덮은 오후였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의 힘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날. 감상을 묻자 그는 이렇게 웃었다.
“보통 광화문에 경찰이 깔릴 때는 집회나 시위를 막을 때인데, 오늘은 한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것을 보니 기분이 묘하군요. 호호.”
신간 소설은 국가의 폭력을 말하지는 않는다. 소설은 폭력의 최소 단위를 다룬다. 가정, 그리고 개인, 더 나아가 그 개인의 내적 파괴 과정을 잔잔히 되짚는다. “결국 사회란 외부 구조의 잘못 때문에 사회의 가장 안쪽인 가정이 파괴되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소설은 한 가정의 붕괴를 ‘복기’한다. 아버지를 돌연사로 잃고 남겨진 아내와 두 아들. 허름한 지방 도시로 이사 간 이 가족의 생계는 막막하다. 어느 날 형은 계단에서 사고로 굴러 떨어져 다치고, 보험금을 탄다. 쉽게 번 돈. 보험 판매를 하는 이모의 꾐에 형은 보험사기를 하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고깃국과 생선도 밥상에 올라온다. 형의 보험사기는 점점 심해지고, 스스로를 파괴하며 생존해가는 모순에 휩싸이면서 괴로워한다.
작품은 2011년 강원 태백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보험사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주민 400여 명이 병원과 짜고 140억여 원을 부정 수급한 사건이다.
“보험사기라면 수억 원을 타서 흥청망청 쓰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사건은 좀 다르게 보였어요. 일부 수급자는 다리가 골절됐다고 몇십만 원 타고, 모녀가 나란히 다리가 부러졌다고 몇십만 원 타는 식이었죠. 물론 범죄는 나쁘지만 이런 ‘생계형’ 사기의 모습이 안타깝게도 다가왔습니다.”
보험사기단 적발 같은 뉴스는 금세 잊혀진다. 하지만 작가는 어쩔 수 없이 보험사기단에 참여했던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찬찬히 그린다. 형은 몸의 곳곳이 부러진다. 이젠 항생제마저 듣지 않는다. 점차 정신도 혼미해진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멈출 수 없는 현실이 참혹하게 펼쳐진다.
그럼 누가 ‘모르는 척’ 하는가. 엄마, 동생, 이모가 그들이다. 하지만 모르는 척하는 게 이들뿐일까.
“사실 보험사기는 일부예요. 등록금 때문에 힘들어하는 대학생부터 취업이 안 돼 고민하는 사람들까지 사회엔 굉장히 많은 문제가 산재해 있죠. 사람들은 굉장히 이기적인 존재예요. 자신이 관련된 문제만 생각하고, 이마저도 너무 커지면 방관하거나 외면하려 하죠. 이런 ‘모르는 척’들을 얘기하고 싶었죠.”
폭력의 이면을 일관되게 그려온 작가는 이제 ‘안보윤의 소설 1기’를 마치고 싶다고 했다. 다른 주제로 옮겨 작품에 정진하고 싶단다.
‘평화는 어떤가’라고 물었더니 그는 “폭력 얘기만 하다 널뛰듯 평화로 옮겨가면 가식적이 될 것 같다”며 깔깔댔다. “미묘한 극점에 놓인 사랑 얘기를 쓰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더 나이가 들면 가능할까요.” 미혼의 여성 작가에게 봄바람이 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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