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식당 착한 이야기]반죽하다 골병나도 파스 못붙여… 메밀에 냄새 밸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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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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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군 삼군리메밀촌

무릎을 꿇고 반죽하는 이철순 씨. 힘을 잘 주기 위해서라지만 기자의 눈에는 마치 수행하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보였다. 오른쪽은 부인 이복재 씨. 횡성=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무릎을 꿇고 반죽하는 이철순 씨. 힘을 잘 주기 위해서라지만 기자의 눈에는 마치 수행하는 구도자의 모습으로 보였다. 오른쪽은 부인 이복재 씨. 횡성=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한국 사람은 맛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고 하지만 정말 멀었다. 대전에서 가기엔. 경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에서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시멘트 포장길로 한참 가야 했다. 산과 고개를 몇 번 넘었다. 동막골, 용수골, 진골….

강원 횡성군 공근면 삼배리 100% 순메밀로 국수를 만든다는 ‘삼군리메밀촌’ 가는 길은 그랬다. 길은 좁아 맞은편에서 차량이 오면 잠시 공간을 찾아 비켜서야 한다. 이 산골에 웬 외제차? 모름지기 삼군리메밀촌에 다녀오는 도회지 차량임을 짐작하게 했다.

지난해 4월 6일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착한식당으로 선정된 삼군리메밀촌을 찾아가는 여정에 기자는 오기와 함께 호기심도 발동했다. “그래 얼마나 맛있는지 보자….”

21일 목요일 대전에서 출발한 지 3시간 만에 도착한 목적지. 주변이 온통 산이어서 ‘하늘 아래 첫 식당’이라는 이름도 어울릴 듯하다. 평일 오전 11시 반경인데도 벌써 10대의 차량이 와 있다.

식당 안에는 손님 30여 명이 벌써 나무식탁에 앉아 메밀을 즐기고 있었다. 얼핏 본 상차림은 메밀국수와 메밀묵, 그리고 지단처럼 얇게 부친 메밀전. 넓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 내놓은 동치미가 독특했다.

먼저 주인 이철순(67) 이복재 씨(57) 부부를 만나볼 생각으로 식당 홀을 지키고 있던 막내아들 원재 씨(31)에게 물었다. 철순 씨는 마침 식당 옆 나무창고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다. 메밀국수는 손님이 주문하면 그때그때 국수를 뽑아 삶는다. 100% 메밀로 만든 국수의 생명은 졸깃함. 펄펄 끓는 물에 순식간에 삶아야 존득함이 유지되기 때문에 화력은 생명이다. 왜소한 체격인데도 장작은 ‘쫙쫙’ 소리를 내며 갈라진다.

국수 삶는 일은 부인 복재 씨 전담이다. 반죽한 메밀은 국수기계에 들어간 뒤 펄펄 끓는 가마솥 물로 직행. 삶는 시간은 양에 따라 1분 30초에서 2분 사이. 정확한 타이밍을 맞추는 게 기술이다. 삶은 국수는 한 가닥도 빼놓지 않고 건져 내야 한다. 만약 한두 가닥이라도 남는다면 다음 손님의 국수에는 한두 가닥 탱탱 불어 버린 국수가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쁘니까 자꾸 묻지 마소.” 장작불 앞에서 이것저것 묻는 기자에게 복재 씨는 특유의 강원도 사투리로 대꾸한다.

이 씨 부부가 고향인 강원 평창군 봉평면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것은 40년 전. 20년 전 작고한 부친 길현 씨가 밭농사 지을 땅을 찾다가 정착했다. 강원도 사람 대부분이 그렇듯 이 씨 가족도 옥수수 감자 메밀을 재배했다. 깊은 산속, 그것도 사람 발길조차 뜸한 곳에 메밀국수집을 개업하게 된 연유가 궁금했다.

사연은 간단했다. 메밀농사를 짓는 데다 식구들이 국수를 좋아해 집안에 국수 뽑는 기계가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가끔씩 찾아와 국수를 직접 뽑아 먹었다. 7년 전 100% 메밀로만 만든 국수를 한번 판매해 보기로 했다. 토종닭도 함께. 서서히 공근면으로, 횡성군으로, 강원도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한번 맛본 사람들의 칭찬이 이어졌다. 인터넷에 소감이 오르내리기 시작하면서 경기 서울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평일 하루 200∼300그릇, 주말 600그릇 판매의 대박 스토리다.

이제는 시식시간. 원래 메밀로 만든 국수는 막국수와 메밀국수로 나뉜다. 막국수는 메밀을 껍질째 갈아 만든 것이다. 껍질을 벗겨 속살로만 만든 게 메밀국수다. 따라서 막국수는 말 그대로 식감이 거칠다. 춘천이나 원주 강릉 등지의 막국수가 그것이다. 반면 메밀국수는 거친 맛은 덜하다. 더욱이 100% 메밀이라면 졸깃함은 없다.

주문이 끝나자 먼저 메밀 삶은 물부터 나온다. 밋밋한 숭늉 맛이랄까, 구수하면서도 은은한 메밀 향이 배어 있다. 이어 식탁에 오른 것은 동치미와 맛보기 메밀묵과 메밀전. 메밀묵은 도토리묵보다는 훨씬 덜 탱글탱글하다. 맛은 구수하다. 퍼석퍼석한 식감으로 봐선 일단 밀가루나 전분 등을 섞지 않은 100% 메밀묵이다.

메밀전은 지단처럼 얇게 부쳤다. 누가 이렇게 곱고 얇게 부쳤을까? 식당 뒤 골방을 찾았다. 동네 할머니 3명이 전을 부치고 있다. 물컹물컹한 반죽을 전통식 팬에, 그것도 참숯 화롯불로 부치고 있다. 워낙 얇아 표면에 송송 구멍까지 뚫려 있다. 메밀이 입안에서 녹을 리 없지만 녹는 느낌이다. 세 사람은 하루 종일 이곳에서 전만 부친다고 한다.

메인 메뉴인 메밀국수. 흑갈색에 얼핏 봐도 다른 게 섞인 것 같지 않다. 동치미 국물 몇 숟가락을 넣고 양념장으로 비벼 먹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기자는 메밀의 진짜 향을 느끼고 싶어 동치미와 양념장은 생략한 뒤 메밀만 젓가락으로 집어 입안에 넣었다. “이게 뭐지?”

누군가가 얘기한 게 생각났다. ‘100% 메밀국수는 맛없는 맛으로 먹는다’고. 눈으로 보고, 냄새를 맡아 보고, 입안에 넣어 보고, 씹어 목젖으로 넘겼지만 뭐라 딱히 말하기 힘들 정도의 밋밋함.

철순 씨가 손에 잔뜩 메밀반죽을 묻힌 채 기자 앞에 앉았다. 그리고 국수를 씹는 기자의 표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철순 씨는 동치미와 양념장을 넣고 비벼 보라고 권한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일까? 씹고 삼킨 뒤 시간이 조금 흐르자 입안에 메밀 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은은한 메밀의 잔향이다. “이 맛이군.” 또 한 젓가락 집어 들고 씹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느끼는 만큼 깨닫는 걸까. 투박하면서도 순박하고, 청결한 메밀의 맛에 매료돼 가고 있었다. 부산에서, 광주에서 400∼500km 거리를 마다 않고 달려오는 식객들의 열정이 바로 이 맛 때문이었을 게다.

채널A가 선정한 여느 ‘착한식당’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방송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방송이 나간 직후 전국에서 몰려드는 손님을 감당 못해 부인 복재 씨가 몸살로 드러눕기도 했다. 철순 씨는 방송사에 전화해 “이영돈 피디, 우리 마누라 책임지라고 해”라며 항의도 했다. 하지만 철순 씨는 무릎을 꿇고 반죽하면서 온 힘을 쓰는 바람에 정작 자기 무릎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는 사실조차 몰랐다. “파스를 붙이고 싶었는데 혹시 메밀에서 파스냄새 날까 봐 그러지도 못했어.”

두 사람 사이에는 3녀 1남이 있다. 강원대를 나와 교사로 재직하고 있는 상숙 씨(40), 서울에서 보건소 다니는 둘째 딸 정숙 씨(37), 그리고 인근 횡성읍내에서 사는 셋째 딸 순남 씨(32), 막내아들 원재 씨다.

손님이 몰려들자 주말과 휴일이면 가까이 사는 순남 씨가 와 거들었다. 장거리종목 남제주군청 실업선수였던 막내 원재 씨는 군 제대 후 직장생활을 하다 아예 식당에 들어앉았다. “돈도 좋지만 사람들이 웬만히 모여야죠. 부모님한테 다 때려치우자고 짜증도 냈어요.”(순남 씨) 철순 씨는 앙탈 부리는 순남 씨에게 “그럴 거면 아예 오지 마”라고 핀잔까지 줬다. 막내아들은 묵묵히 서빙과 계산을 돕는다. 그것도 모자라 동네 아주머니 6명을 고용했다.

식객들의 반응은 어떨까? 이기수 씨(61·경기 용인시)는 평소 친하게 지내는 부부 세 쌍과 함께 1시간 반을 운전해 찾아왔다. 채널A를 본 뒤 언젠가는 한번 가 보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이제야 실천했단다. 이 씨는 “집에서 일절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데 역시 잘 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앞으로 방송에 나온 착한식당을 모두 찾아다닐 생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배병국 씨는 이날 관동대에 다니는 딸 졸업식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가족 전체가 들렀다고 한다. “두꺼우면서도 비교적 부드럽고 담백해 지금까지 먹어 본 메밀 중 최고”라고 평가했다.

식재료 전문가인 김형찬 씨는 “메밀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싶다. 국산 메밀이 수입 메밀보다 3, 4배 비싼 점을 감안하면 국수 한 그릇에 6000원이면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원래는 토종닭도 메뉴에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이 워낙 많아 토종닭은 포기했다. 가장 미안한 것은 월요일이 휴무인 사실을 모르고 찾아오는 손님들. 몸이 버텨야 장사한다는 심정으로 문 열어 주려다 꾹 참았다.

이 씨 부부는 치솟는 메밀 값 때문에 걱정이다.

“한 말(60kg)을 찧으면 30kg으로 줄어. 가격은 40만 원이나 허지. 어느 집들은 다른 것도 섞는다고 하는데 방송에서 때려 놨으니 그럴 수 있나. 책임진다는 거, 그거 보통 힘든 게 아닌 것 같아.”

철순 씨 표정에는 100% 메밀국수를 찾아 멀리서 오는 손님들을 실망시켜선 안 된다는 촌부의 양심이 배어 있었다.

횡성=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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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군리메밀촌#착한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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