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마크 엘리엇 지음·윤철희 옮김/616쪽·2만5000원 민음인
◇거장의 숨결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버트 카프시스 등 엮음/김현우 옮김/504쪽·1만8000원 마음산책
좋을 때는 ‘스타’지만 못할 때는 ‘딴따라’. 배우들이 짊어져야 할 숙명이다. 돈과 명예를 얻어도 뒤통수에는 늘 딴따라라는 비아냥 세례다. 별들이 쏟아지는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대중은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비난을 쏟아내고, 파파라치의 카메라는 사생활을 팔아 주머니를 채운다. 존경 받으려면 다른 직업을 알아봐라.
이런 할리우드에서도 예외는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두 책은 올해 83세인 이스트우드가 딴따라에서 위대한 감독으로 존경받기까지를 담았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그에 관한 평전이고, ‘거장의 숨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영화 개봉 때마다 했던 인터뷰 24편을 묶었다.
‘이스트우드 인생극장’의 클라이맥스는 아마도 2004년 2월일 것이다. 그가 제작, 감독, 주연을 맡은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탔다. 그의 나이 74세였다. 1992년 제작, 연출, 주연을 한 ‘용서받지 못한 자’가 작품상과 감독상을 탔을 땐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1968년 제작사 ‘말파소’를 설립해 만든 영화들이 그리 수준 높다는 평가를 받지 못했으니까….
그는 1970년대 최고의 딴따라였다. 관객을 가장 많이 끌어모은 스타였다. 1964년 세르조 레오네 감독의 ‘황야의 무법자’는 첫 주연 작품. ‘스파게티 웨스턴 3부작’으로 불린 ‘황야의 무법자’ ‘석양의 건맨’ ‘석양의 건맨2’를 지나며 최고 인기를 누렸다. 193cm의 키에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삐딱하게 시가를 문 총잡이를 보러 극장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하지만 이 껑충한 싸구려 총잡이를 우러러보는 이는 없었다.
193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자마자 그는 직업이 없는 아버지를 따라 캘리포니아 주를 떠돌았다. 고교를 졸업하고 벌목장, 제지공장, 철공소에서 일하다 군 제대 후 간신히 대학(로스앤젤레스 시티 칼리지)에 들어갔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주급 75달러(약 8만 원) 단역배우로 근근이 지내다가 10년 만에 ‘황야의 무법자’에 출연했다.
밑바닥 인생에서 스타로, 다시 최고의 감독으로 쉬지 않고 계단을 밟아왔다. 배우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그가 이뤄낸 성숙과 정신적 고양을 목격하는 것은 이 책에 기꺼이 돈을 지불해도 좋을 이유다.
이스트우드는 지금도 영화의 길에서 쉬지 않는다. 2011년 연출한 ‘히어애프터’에 대해 뉴스위크는 “이스트우드 최고의 걸작”이라고 했다. 지난해 말 국내 개봉한 ‘내 인생의 마지막 변화구’의 연기에 대해서도 찬사가 쏟아졌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뚜벅뚜벅 인생의 또 다른 정점을 향해 달리고 있다.
무릎을 꺾는 혹평과 주위의 만류에도 감독으로 우뚝 선 이스트우드. 그는 다른 스타들이 빠져들었던 마약, 음주, 도박의 유혹을 이겨내고 인생의 최고점을 쐈다. 총잡이의 명중 비결을 들어보자.
“뛰어난 감독들, 형편없는 감독들 가릴 것 없이 17년을 보낸 끝에 나는 내 영화를 만들 준비를 마친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저질렀던 모든 실수를 기억에 저장해두고, 배웠던 모든 좋은 점들을 비축해 뒀습니다. 비로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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