늠름한 수탉, 큼직한 개미, 거대한 사과가 각기 화면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누구라도 그림 주인공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수탉 산수’ ‘개미 산수’ ‘사과 산수’란 제목까지 붙여놓았다. 전통 산수와 달리 풍경 대신 자연 공간 속에 살아가는 생명체의 하모니에 무게중심을 이동한 색다른 산수 패러디 작업이다.
올해 회갑을 맞은 한국화가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60)가 ‘산수’라는 기존 장르를 빌려와 자신의 고유한 조형언어로 번역한 근작 30여 점을 선보였다.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현대 본관과 두가헌 갤러리에서 24일까지 열리는 ‘생명의 노래-산수간(間)’전이다. 02-2287-3591
손수 만든 닥종이에 황토빛 산수가 배경으로 등장하고 그 위로 인물 화훼 동물과 추상적 형상이 자유롭게 대등한 관계로 어우러진다. 화가는 “동양 산수화의 엄숙주의를 깨고 싶었다. 일종의 자연 패러디 의식이라 부를 수 있겠다”고 말했다.
한국화의 전통방식과 현대미감을 융합한 화폭에선 기운생동과 휴머니즘이 공존한다. 포근한 느낌과 따스한 온기로 충만한 색채들이 머리가 아니라 가슴을 먼저 파고든다. 시대가 험난할수록 우리한테 절실한 것은 부드러움이라는 화가의 믿음을 반영한 그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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