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샵의 프리미엄 울 전문 자체 브랜드(PB), ‘쏘 울(SO, WOOL)’은 올해 김서룡 디자이너와 손을 잡았다. 김 디자이너가 고급스러운 트위드 소재로 제작한 ‘럭셔리 트위드 재킷’의 모습. 입체적인 패턴을 사용해 날씬해 보이도록 디자인했다는 설명이다. GS샵 제공
지난달 5일 정오(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의 스탠더드호텔에서 열린 ‘2013 GS샵 인 뉴욕’. 홈쇼핑 업계 최초로 GS샵이 뉴욕패션위크 기간에 맞춰 국내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와 협업해 만든 새 브랜드들을 선보이는 자리였다.
GS샵이 올해 컬래버레이션하기로 한 6개 디자이너 브랜드 가운데 출시가 임박한 브랜드 4개가 무대에 올랐다. 디자이너 손정완 씨의 세컨드 브랜드 ‘SJ WANI’, 이승희 씨의 ‘알레뜨 바이 이승희’, 홍혜진 씨의 ‘더 스튜디오 K 위드 로보’, 김서룡 씨의 ‘쏘 울’ 등은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국내에선 유명 업체지만 해외에선 ‘신인’에 지나지 않는 데다 첫 시도이다 보니 시행착오도 따랐다. 오전 9시 반에 도착해 11시부터 리허설을 하기로 한 메이저급 모델 에이전시 소속 모델들이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이들은 다행히 쇼 시작 직전 도착해 무사히 캣워크에 올랐다. 반년간 이 행사를 준비해 온 강성준 GS샵 패션의류팀 부장은 “축적된 노하우가 있었으면 더 잘 컨트롤할 수 있었을 텐데 첫 도전이라 혹시 뭐가 잘못될까 불안한 마음이 컸다”고 전했다.
‘국내 대형 백화점도 못했던 시도를 홈쇼핑이 하다니….’ 내부적으로도 우려가 많았던 도전이었다. 이렇게 준비한 뉴욕 패션쇼는 다행히 성공적으로 끝났다. 준비한 200석이 모자라 서서 쇼를 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TV드라마 ‘섹스앤드더시티’의 등장인물 패션 스타일링을 맡은 스타일리스트 퍼트리샤 필드, 뉴욕의 멀티숍 ‘스티븐 앨런’을 운영하는 스티븐 앨런, 맨해튼의 고급 백화점인 삭스피프스애버뉴의 패션 바이어 등이 참석했다. 필드는 “입기에 좋은 옷”이라고 평가했다. 화보를 찍기 위해 뉴욕의 거리에 나섰을 때 패션 매장 매니저들이 “어디 옷이냐”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전에도 홈쇼핑 의류로 수차례 해외 촬영을 진행해 왔지만 현지인들이 이만큼 적극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프리미엄 추구하는 홈쇼핑 업계
현재 GS샵을 필두로 국내 홈쇼핑 업계는 모두 패션과의 사랑에 푹 빠졌다. 의류가 홈쇼핑의 주력 상품군으로 떴기 때문이다. 강 부장은 “GS샵의 연간 방송 내용 중 약 40%를 차지하는 패션 분야에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유명 디자이너와의 협업이라는 도전이 절실했다”고 설명했다.
홈쇼핑은 인터넷몰 활성화와 더불어 2009년부터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GS샵은 이에 맞춰 기존 홈쇼핑의 저가 이미지를 극복하는 고급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최근 H&M 등 제조유통일괄형(SPA) 브랜드가 디자이너와 협업을 해 좋은 반응을 얻은 점도 힘이 됐다.
디자이너들에게도 홈쇼핑이라는 공간은 매력적인 유통 채널이었다. GS샵은 기존의 유통망과 제작 인프라를 제공할 수 있었다.
GS샵의 디자이너 프로젝트에 가장 먼저 합류한 손정완 씨는 GS샵이 특별히 공들여 섭외했다. 손 씨가 세컨드 라인을 홈쇼핑과 함께 만드는 게 좋을지에 대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강 부장은 “명성에 흠집이 나지 않게 정성을 다해 세컨드 라인을 만들겠다고 설득한 끝에 함께 작업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한 케이블 채널의 디자이너 선발 프로그램인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1기 출연자였던 이승희 씨와는 처음부터 얘기가 잘 통했다. 매장에서 직접 수많은 고객들을 접해 소비자의 취향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혜진 씨는 가죽이나 퍼 같은 특수 소재의 달인이다. GS샵이 운영하는 가죽 전문 브랜드 ‘로보’가 디자인 혁신을 꾀하던 시점이었던 터라 새로운 시각을 가진 홍 씨의 도움이 절실했다. GS샵은 그의 재능과 개성을 최대한 살리기를 바랐고 그 결과 ‘베지터블 레더’라는 새로운 소재로 만든 가죽 트렌치코트가 탄생했다.
이석태 씨와는 실험적인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자신의 컬렉션에 쓰인 프린트를 재해석해 한정 수량만 생산하는 시스템으로 마니아층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에는 김석원 윤원정 부부 디자이너가 운영하는 ‘앤디앤뎁’이 디자이너 라인에 새롭게 합류했다. GS샵의 울 전문 자체 브랜드(PB), ‘쏘 울(SO, WOOL)’의 올해 파트너로는 김서룡 씨가 낙점됐다.
GS샵이 디자이너들에게 일관되게 요청한 것은 ‘홈쇼핑 패션의 선입관을 깨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이 협업 초기, 홈쇼핑 고객 정보 등의 데이터를 요청해도 일부러 전해주지 않았다.
이렇게 GS샵의 패션 도전은 시작됐다. 백화점 입점 브랜드조차 비슷비슷한 디자인을 찍어내 몰개성이 트렌드가 된 시대, 창조정신이 팔딱거리는 디자이너들을 안방극장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렇게 국내 홈쇼핑 패션은 보다 많은 고객들이 디자이너 브랜드의 고감성 디자인을 접하는 ‘패션 민주화’를 실천하고 있다.
올해 GS샵의 ‘디자이너 프로젝트’를 함께 할 디자이너들. 왼쪽부터 ‘아티스트 바이 이석태’를 선보이는 이석태 씨, ‘알레뜨 바이 이승희’의 이승희 씨, ‘앤디앤뎁’의 부부 디자이너 윤원정, 김석원 씨, ‘SJ WANI’의 손정완 씨, ‘더 스튜디오 K 위드 로보’의 홍혜진씨, ‘쏘 울’을 맡은 김서룡 씨. GS샵 제공▼ 손정완의 로맨티시즘-홍혜진의 듀얼트렌치 영감 빛나다 ▼
“옛날엔 홈쇼핑이 퀄리티나 디자인 측면에서 부족한 점이 많았잖아요. 기존의 이미지가 손상될까 싶어 수많은 러브콜에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죠. 이젠 시대가 달라졌고 또 홈쇼핑 업체가 패션사업에 사활을 걸면서 상업성뿐 아니라 완성도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는 확신이 들어 뛰어들었어요.”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로 이미 뉴욕컬렉션 무대에서 인정을 받고 있는 손정완 씨는 GS샵과의 컬래버레이션을 결정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어릴 적부터 애칭으로 부르던 그의 이름 ‘와니’도 이 세컨드 라인에 붙여 줬다. 그가 2일 선보인 ‘아이디얼 믹스 재킷’은 첫 방송에서 16분 만에 준비한 물량 3500벌이 모두 팔렸다. 서로 다른 소재와 컬러를 매치한 디자인은 독특하고 고급스러웠다. 20일부터 판매될 ‘릴리 블라우스’는 양 어깨 끝자락에서 시작해 팔 전체와 등 윗부분까지 자연스럽게 꽃무늬가 새겨져 ‘손정완표 로맨티시즘’을 느끼게 해 줄 듯.
‘알레뜨 바이 이승희’가 2가지 스타일을 한 세트로 선보이는 라피네 블라우스.이승희 ‘알레뜨(Alette) 바이 이승희’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를 거쳐 제일모직 여성복 브랜드 ‘구호’에서 컬렉션 디자이너로 근무한 이력을 가진 이승희 씨는 16일 카디건형의 ‘누보 재킷’과 ‘라피네 블라우스’를 처음 선보일 예정. 앞섶을 하늘하늘 늘어뜨려 여성스러운 느낌의 재킷과 기하학적인 프린트가 새겨진 블라우스는 세련된 컨템퍼러리 디자인을 찾는 이들에게 사랑 받을 듯.
이 씨는 “백화점에서만 고급 소재를 만날 수 있다는 고정 관념을 깰 것”이라며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만 볼 수 있는 3차원(3D) 입체패턴으로 제작하고 사이즈는 55부터 77까지 마련해 보다 폭넓게 사랑받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홍혜진 씨가 이끄는 ‘더 스튜디오 K 위드 로보’의 큐브롱재킷.홍혜진 ‘더 스튜디오 K 위드 로보’
홍혜진 씨는 후드형 트렌치를 재해석한 ‘듀얼 트렌치’를 지난달 중순 처음 선보였다. 새로 개발한 ‘베지터블 레더’ 소재는 얼룩이나 긁힌 상처도 자연스럽게 남아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워 보인다. 최근 패션 업계를 강타한 트랜스포머 트렌드를 반영해 후드를 뗐다 붙일 수 있게 만들었다.
“디자이너 옷도 얼마든지 편하고 즐겁게 입을 수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입으면서 소소한 디테일들을 발견해 가는 재미를 주는 게 목표입니다. 심플하고 베이직한 범용 디자인에 초점을 맞췄어요.”
김서룡 씨가 디자인을 맡은 ‘쏘 울’의 ‘옴므 시그니처 울재킷’.김서룡 ‘쏘 울(SO, WOOL)’
‘쏘 울’은 GS샵이 수년째 만들어오고 있는 대표적인 PB다. 올해는 김서룡 씨와 함께 제작했다. 김 씨가 라인과 디자인, 소재, 안감까지 직접 선정하고 매칭한 트위드 재킷은 GS샵이 꼽는 ‘회심의 아이템’이다.
“젊은 고객들이 입는 몸에 꼭 맞는 디자인보다 좀 더 여유가 느껴지는 재킷을 추구해요. 안감 재질까지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애썼어요. 30대 중반∼40대가 메인 타깃입니다.”
이석태 ‘아티스트 바이 이석태’
4월 말부터 패션 피플을 겨냥해 난이도 있는 디자인이 특징인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 구조적인 디자인이 돋보이는 재킷과 함께 리넨 소재의 블라우스도 선보인다. 절제되고 단순한 디자인에 화려한 패턴이 가미돼 강렬한 느낌. 그는 “디자이너들은 대개 대량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보니 적정 가격을 맞추기가 어려운데 홈쇼핑의 유통과 생산 플랫폼을 활용해 보다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옷을 선보일 수 있게 돼 뿌듯하다”고 전했다.
김석원 윤원정 ‘앤디앤뎁’
앤디앤뎁은 올 하반기부터 새 라인을 선보일 예정. 김석원 씨는 “프리미엄 디자이너 브랜드들도 보다 합리적인 가격대를 시도해도 좋을 정도로 국내 패션 시장이 성숙했다고 본다”며 “관점이나 스타일, 심지어 감성마저 엇비슷해지고 있는 현대인들의 니즈를 홈쇼핑 업체가 공략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 판단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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