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라면 어렸을 때 자동차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이 되면 방 벽에 슈퍼카 사진 하나쯤 붙여놓고 고등학생 땐 대학에 가면 자동차를 타고 놀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로망을 이루기는 쉽지 않다. 자동차 살 돈을 어렵게 마련한다고 해도 매달 들어가는 기름값, 주차비, 보험료와 각종 세금을 대학생이 부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싸구려 중고차를 샀다가 수리비 폭탄을 맞고 눈물을 흘리는 일도 종종 있다.
사회인이 돼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성실하게 노력해 직장에 들어가도 자동차 한 대 살 때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자동차 한 대쯤 쉽게 살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연봉이 높은 만큼 할 일이 많기 때문에 자동차를 타고 다닐 시간이 없다. 태어나면서부터 언제나 마음속에 자동차를 담고 있었지만 그걸 가까이 하기는 의외로 쉽지 않다.
자동차를 사는 날이 왔다고 해도 손에 들려진 키는 빨간색 스포츠카나 지붕이 열리는 컨버터블, 사막이나 바위산도 거뜬히 넘을 수 있는 오프로더가 아니라 십중팔구 개성 없는 패밀리 세단이다. 아니면 덩치는 산만 해도 바위산 근처라도 갔다가는 큰일 나는 전륜구동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귀족들만 자동차를 타고 다녔던 100년 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멋진 자동차를 소유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지나가는 빨간 스포츠카를 보면 “저 운전자는 분명 부모가 부자거나 플레이보이일 것”이라는 추측을 할 때가 있다. 근거 있는 추측이라기보다는 멋진 자동차를 갖지 못한 자기 최면이자 위안이다. 실제로 빨간 스포츠카의 주인공이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차를 샀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초라해져 적개심을 가질 때가 있다. 가끔 ‘재벌가 모 회장이 수억 원짜리 스포츠카를 타고…’ 하는 식의 기사가 나올 때가 있다. 대부분은 서민들의 집과 맞먹는 가격의 호화 스포츠카를 타고 질주를 즐긴다며 비방하는 뉘앙스를 주는 것들이다. 그러나 수천억 원 부자가 타는 수억 원짜리 스포츠카는 월급쟁이가 타는 경차보다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 샐러리맨들이 자산의 10% 이상에 해당하는 가격의 차를 끌고 다니는 것과 비교해보면 재벌의 스포츠카 한두 대는 무척 근검절약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수십 대쯤 사줘야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샐러리맨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지 않겠나 싶을 정도다.
어른이 되면서 벽에다 슈퍼카 사진을 붙이지 않게 되는 건 그만큼 현실적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처럼 “언젠가는 타고 말겠다”는 생각을 갖는다면 지나가는 슈퍼카에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는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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