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통음식 요리사. 5년 전 일본 도쿄 신주쿠에 레스토랑을 내고 운영 중. 세계적인 미식 잡지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두 개를 받은 실력파…. 세 가지 단서만 들으면 나이 든 거장일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어깨에 힘도 좀 들어갔을 것이고, 자신의 요리철학을 얘기할 때는 남다른 수식어로 ‘쫄깃하게’ 답할 줄 아는 사람 아닐까.
요리사 고이즈미 고지(小泉功二·34) 씨에 대한 얘기다. 29세에 정통 일식 레스토랑 ‘고하쿠’를 냈고 3년 만에 ‘미슐랭 별 두 개’ 요리사로 주목을 받았다.
15일 서울 중구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에서 만난 그는 거장도, 어깨에 힘을 주는 사람도 아니었다. 그는 이제 막 데뷔한 요리사처럼 인터뷰 내내 부끄러운 듯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러나 요리 세계에서 그는 수줍어하는 요리사가 아니다. 코스 순서를 뒤바꾸고 기존에 잘 쓰지 않던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등 실험적인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일식이 다른 음식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통이 강한 편임을 감안하면 ‘일식계의 이단아’쯤 된다.
“일식도 젊어질 수 있다”고 외치는 그를 일본에서는 ‘일본 요리계의 신성’으로 부르고 있다. 한국 미식가들이 관심을 보이자 고이즈미 씨는 15, 16일 이틀 동안 웨스틴조선호텔 스시조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만찬 행사를 열었다. 한국에서 요리 행사는 처음이다.
―요리 신동인가.
“어릴 적 요리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달걀 깨는 법도 몰랐다. 미용이나 디자인 계통 일을 하고 싶었는데 고등학교 친구가 ‘요리전문학교에 가자’고 했다. 그게 뭘까. 호기심이 생겼다.” ―전문학교를 갔다고 요리사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쉽지 않을 텐데….
“처음 만든 요리가 학교 직원들 주는 덮밥이었다. 돼지고기와 숙주나물을 얹어 10인분을 만들어 내놨는데 사람들 표정이 별로였다. 왜 그럴까. 내가 만든 음식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오기가 생겼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지금의 내 모습(요리사)이 됐다.”
요리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의 동료였던 요리사 이시카와 히데키(石川秀樹·49) 씨를 소개 받았다. 졸업 후 2003년 이시카와 씨가 차린 레스토랑 ‘이시카와’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도쿄 신주쿠에 있는 이시카와 레스토랑은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은 곳.
5년 동안 스승 어깨 너머로 배운 것을 토대로 2008년 고하쿠 레스토랑을 열었다. 송로버섯 요리나 중국 요리에서나 보던 샥스핀 등으로 일식을 만들었다. 튀김의 바삭함이 좋아 샴페인을 곁들여 식전 요리로 내는 등 순서도 바꿨다. “신주쿠에 특이한 일식집이 있다”며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3년도 안 돼 ‘미슐랭 별 두 개’ 명물이 됐다.
―미슐랭 가이드로부터 인정받은 계기가 뭔가. 특이한 시도를 해서 그런가.
“내가 특별히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요리를 통해 손님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튀김을 코스 요리 앞에 내놓는 것도 배고플 때 바삭한 튀김을 먹으면 손님이 더 기뻐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미술작품을 보러 미술관에 가고 도자기 빚는 법을 배우는 등 문화활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기르기 위해서다. ‘내 식당이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돼야 한다’가 아니라 손님들이 ‘왜 이 식당은 미슐랭 가이드에 소개되지 않나’고 말하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
이번 행사에서 그는 디저트를 포함해 12개 요리를 선보였다. 복의 정소(시라코)와 송로버섯을 넣은 요리부터 생선 대신 쥐치로 만든 사시미 요리, 게살 특유의 맛을 강조하기 위해 간을 하지 않은 게살 국물 요리 등 다양하다. ‘바삭함’을 위해 옥도미 등 튀김 요리는 예상대로 식전 요리(두 번째)로 냈다.
그는 감자탕, 간장게장 등 한식에도 관심을 보였다. 특히 고깃집에서 먹어 본 ‘백김치 국수말이’를 으뜸으로 쳤다. “자극적이지 않고 산뜻해서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꿈은 세계적인 레스토랑을 내는 것보다 일본 내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일식당을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양요리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에게 일식도 충분히 세련되고 즐거운 요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코스 요리 위주의 비싼 식당 대신 젊은이들도 부담 없이 올 수 있는 식당을 내는 게 꿈이다. 그러다 보면 세계적인 일식 요리사도 나오고 일식도 세계화가 되지 않을까. 일식 특유의 정통성에 새로울 ‘신(新)’을 덧붙이는 것.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고이즈미 스타일’의 요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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